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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 중흥사에서, 1857년 봄의 금란계
  • 1477      

작자미상 <금란계회도> ≪금란계첩≫ 1857년, 종이에 수묵담채, 42cmx109.5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 중엽 중인 모임을 그려 화첩으로 묶은 계회도이다. 그림 앞쪽으로 세 쪽에 걸쳐 써 있는 서문에 의하면, 안시윤이라는 사람이 정사년 음력 3월 보름에 자사재(自思齋), 묵재(默齋)라는 사람들과 북한산을 유람하다가 중흥사에 묵게 되었고, 그곳에서 여러 벗들을 불러 모임을 가진 일을 그림으로 남겼다. 표지에 '금란계장'이라고 예서로 써 있고 긴 서문 뒤에 맨 마지막에 그림이 묶여있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왼쪽으로 계곡물이 흐르는 옆에 절이 자리잡고 있고, 너른 공터에 나무 그늘에 여기저기 흩어져 담소를 나누는 선비들의 모습이 섬세하고 단정하게 그려져 있다. 길게 곰방대를 물고 있는 노인, 시가 써 있는 듯한 두루마리를 보고 있거나 무언가를 적는 사람, 술병, 술잔, 찬합, 수염이 없는 젊은 선비, 스님들, 동자 등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 모임을 이끌고 화첩을 만든 이 안시윤이라는 이는 누구일까? 1851년(철종 2) 『일성록』 기록에 서리로 안시윤이 기록돼 있어 중앙하급관리인 경아전 서리였던 안시윤이 그일 가능성이 크다. 중인 모임은 의관이나 역관 등 전문 기술직 중인은 물론 경아전 서리도 많이 참여했다. 이 금란계도 그 당시 크게 유행했던 중인 모임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그림 안에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데, 서문을 통해 중흥사 스님 세 분들도 자리를 함께 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었음도 알 수 있다. 

중흥사에 太月·道月·漢坡堂이란 스님이 있는데, 그들의 인격은 소탈하면서 꾸밈이 없고 온화하면서 엄숙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어긋나는 점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덕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참여를 허락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서문 중)

안시윤은 이 자리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우리들은 나이가 많습니다. 꽃이 피는 아침과 달이 뜨는 저녁에 나란히 자리를 함께 하고, 무성한 숲에 앉거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서 산나물 들나물로 안주를 만들고 한 말 술로 즐거워하며 우리들의 여생을 마친다면 태평성세의 은자라고 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해는 서산에 지고 남아 있는 햇빛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계를 후손에게 전하고, 우리 자손들로 하여금 또한 오늘의 의미를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남기는 큰 자취가 아니겠습니까.(서문 중)

이 모임이 언제까지 유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봄날 자신들의 입장을 떠나 믿음을 가지고 좋은 인연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운치를 엿볼 수 있다.
관련 연구에서 이 그림을 그린 이를 이한철(李漢喆 1812-1893)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참고 : 마대진, 『朝鮮 後期 中人 契會·雅會圖 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19.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06.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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