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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현전에서 만난 두 마리의 학 <지곡송학도>
  • 1171      

유자미柳自湄 <지곡송학도芝谷松鶴圖> 1434년, 비단에 채색, 40.5x34.0㎝, 간송미술관



조선 초기 사대부였던 문인이 그린 채색의 그림 한 점이 전해진다. 지곡(영지버섯계곡)에 소나무와 학이 있는 그림 <지곡송학도>가 그려진 1434년은 세종 16년 갑인년으로 훈민정음을 찍은 갑인자가 만들어지고 앙부일구가 종로에 설치된 해다. 

그림에 수록된 제화글의 내용에 의하면 세종 16년(1434)에 유자미柳自湄(?~1462)가 집현전에 근무하던 때 동료인 진일재眞逸齋 성간成侃(1427-1456)과 함께 바라본 풍경을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글씨와 그림에 능했던 유자미가 남긴 그림으로는 현재 이것이 유일하다. 


日余持被玉堂 어느 날 내가 옥당에서 옷을 입고 지키고 있을 때
厥明有雙埜鶴 그 다음 날 갑자기 들판에 학이 두 마리 있었는데
翩䙴羽而下 날개로 훌쩍 날아올라 아래로 내려와서
戞然長鳴 끼룩거리며 긴 소리를 내면서
若有期而掠余衣也 이에 기다리고 있다가 내 옷을 훔쳐갔다.
友人和仲成學士  친구인 성화중(成和仲) 학사가
奇此事, 勸余以畵之 이 일이 기이하여 내게 그림을 그리도록 권하니
余作二絶, 以爲山中故事云爾 내가 시(詩) 두수를 지어 산중고사로 여기며 이같이 말한다.
瀛洲學士是登仙 영주학사인 이것이 신선에 오르니
何翅九皐聲聞天 어찌 깊은 못에서 날개를 펴는 소리가 하늘에 들릴까?
造物解君香案籍 조물주가 그대를 알아 책상의 문서가 향기로우니
故敎雙鶴舞華筵 이 때문에 두 마리 학에게 춤추게 하여 자리를 빛냈네.
萬里高城却爲誰 만 리의 높은 성은 누굴 위해 버렸나?
縞衣丹頂玉堂宜 흰옷에 붉은 머리는 옥당이 알맞네.
作畵從容成雙絶 모습 따라 그림 그려 한 쌍을 이루어 끝내니
七分筆下七分詩 칠분쯤 글이고 칠분쯤 시가 되었네.
甲寅 重陽前日 西山 柳自湄 갑인년 중양절 전날 서산 유자미

오세창이 펴낸 『근역서화징』에서 유자미는 자와 호(자 원지元之, 호 서산西山) 외에 1451년 문과에 급제, 벼슬은 감찰까지 지냈다는 것과 ‘시와 그림에 능했다’는 기록을 짤막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조선 초기의 화조를 그린 그림들이 많이 그렇듯이 중국의 궁중 스타일(원체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변각 구도, 소나무의 표현 등에서는 남송 마하파의 화풍도 볼 수 있다. 조선 초기의 그림이 워낙 십여 점 밖에 남아 있지 않고 화조 그림은 더욱 드물기 때문에 그 시대의 화풍을 짐작하는 기준점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화원이 그린 것처럼 먹과 붓, 그리고 색을 능숙하게 다루어 단정한 그림을 그린 사대부 양반, 유자미는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던 계유정난과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이다. 1455년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기자 자리를 내어놓고 평생 절의를 지키고 은거하는 삶을 살았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다음 해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손녀를 데려다 숨겨 기르고 며느리로 삼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李縡는 “세상에서 말하는 바 여섯 선생(사육신)은 진정 환히 일월과 같이 그 빛을 다투고, 그 나머지 산림에 종적을 감춘 이 또한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간혹 수백 년이 지난 뒤에 비로소 드러난 이도 있다. 나는 여기에서 한 사람을 발견하였으니 유자미 공이다”라고 써서 사육신만 알려졌지만 유자미 또한 그 절개를 기려야 할 만한 사람이라 평가했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2.06.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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