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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가락 끝에서 펼쳐진 절경 - <옥순봉도> <구담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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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단양에서 나와 제천 쪽으로 가다 보면 남한강이 만들어내는 넓은 충주호 또는 청풍호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웅장한 산세, 절벽, 짙푸른 나무, 깊고 푸른 물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경치는 그야말로 속세에 찌든 몸을 씻어주는 듯합니다. 다른 유명한 관광지에 비해 사람이 적은 편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 있었는데, 주말 예능 프로그램 ‘몇 박 몇 일’에 나온 다음부터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네요. 


몸과 마음이 지친 어느 날이라면 청풍호반을 찾아가, 뽕짝 울려대는 유람선 선착장을 비켜나서 그저 아무 곳에나 강가에 바람을 맞고 서서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어집니다.

조선시대에도 유람을 하는 선비들이 자주 찾던 유명 장소인 이 곳의 절경 중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긴 옥순봉과 구담봉이 있습니다. 이 두 곳은 제천과 단양 중간지역으로 제천10경과 단양8경의 교집합입니다. 오늘은 정조 때의 문인화가 윤제홍이 그린 <옥순봉도>와 <구담봉도>를 감상하려고 합니다.

조선 초에는 옥순봉이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습니다. 당시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 선생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단양 태생의 '두향'이라는 기녀가 있었는데, 그녀가 아름다운 옥순봉의 절경을 보고 단양군에 속하게 해달라고 선생께 청하였다고 합니다.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하지 않자 이황 선생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랜 모양입니다. 돌기둥이 마치 대나무 순이 솟아 오른 것과 같다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이라 새겨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는 유래가 전합니다. 

이 <옥순봉도>를 그린 윤제홍(1764~?)이라는 분은 스물아홉에 생원시를 합격하고 서른한 살에 친림 춘당대 정시에 입격, 그제서야 관직에 들 수 있게 됩니다. 중간에 유배도 가고 우여곡절이 많다가 1822년(59세) 무렵 청풍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몇 년 후 제주도경차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이 곳의 산수를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을 테고, 그 옥순봉의 산수를 자신의 방법대로 해석하여 화폭에 담았습니다. 아래 그림은 1833년(70세)에 그가 그린 옥순봉도입니다. 


윤제홍尹濟弘 <옥순봉도玉筍峯圖> 지두산수도指頭山水圖 8폭 중 제3폭, 족자, 종이에 먹, 67.3×45.4cm, 조선 1833년, 삼성미술관 리움


余每游玉筍峯下
내가 옥순봉 아래를 놀러갈 때마다
切恨壁底无茅亭
절벽 아래 정자가 없음을 안타까워하였다.
近日得訪李凌壺帖
근래에 능호 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화첩을 보았는데,
卽此本.滌余洗恨乎
즉 이 그림은 혹시나 나의 안타까움을 씻어주지 않겠는가?


옥순봉 모습


화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인상의 화첩을 보고 평소에 옥순봉을 보고 느낀 자신의 뜻을 반영하여 좋게 말해 재창조, 나쁘게 말해 왜곡해서 그리게 됩니다. 옥순봉의 돌기둥 두 개의 높이나 거리를 좀더 과장하여 그리고 폭포와 정자를 상상하여 그려넣어 더 뭔가 신선이 살 것 같은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원의 옥순봉도와 비교해 보더라도 이름만 옥순봉도이지 상상의 공간이나 다름없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옥순봉도>
단원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충청도 연풍의 현감에 임명되었다.
이 때, 1796년 <옥순봉도(玉筍峯圖)>를 남겼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대표작인
<병진년화첩 (丙辰年畵帖)> 중의 한 폭으로, 현재 보물 제7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윤제홍이 당시에 화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받았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신위(申緯)가 “청풍수(淸風守) 윤제홍의 산수는 한때의 선(選)이다”라고 한 것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의 정서를 알아볼 수 있는 문집도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남긴 작품 속 제발에서는 그림과 글씨의 스타일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점이 느껴지고, 스스로 ‘이인상을 방하였다’고 밝힐 정도로 그의 작품 스타일과 유사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배치나 구도가 독특한 작품이 많고 손가락 끝에 먹을 묻힌 지두화를 선호했으며, 단순화하거나 과감한 화면을 만들어내어 신선하게 느껴지는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윤제홍 <한라산도> 



윤제홍<옥순봉도>, 《학산구구옹첩》 제 8면, 종이에 먹, 58.5×31.6cm, 조선 1844년, 개인 소장 



値風恬日朗 每自寒碧樓 拏舟.流到玉.峯 興盡而返 有權柏得者 吹玉笛 人或疑神仙之遊 同舟
者小石金侍郞 川上尹洗馬 茶.山人權. 皆韻人奇士也
鶴山九九翁作
바람이 잠잠해지고 햇살이 밝은 날이면 한벽루에서 배를 저어 거슬러 올라가 옥순봉에 이르고
흥이 다해서야 돌아왔다. 권백득이라는 자는 옥피리를 잘 부는 자로 신선처럼 노닌다. 함께 배를 탄 사람은 소석 김시랑, 천상 윤세마, 다불산인 권이로서 모두 운치 있는 기이한 선비들이다. 학산구구옹이 그리다.

위의 그림은 《학산구구옹첩鶴山九九翁帖》이라는 화첩에 실려 있는 또다른 윤제홍의 <옥순봉도>로, ‘학산’은 윤제홍의 호이고 ‘구구옹’이란 구십구세를 바라보는 노인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 화첩을 낸 1844년에 그는 무려 81살이었는데, 해주 천사관, 단양 옥순봉, 제주 한라산, 흡곡 천도를 지두법으로 그린 그림들이 들어 있습니다. 윤제홍은 청풍부사, 제주도 경차관, 강원도 낭천 현감, 해주 풍천부사를 지냈는데, 해당 지역의 산수를 유람하였던 경험을 되살려서 늘그막에 작품으로 남긴 것입니다. 옥순봉과 유람하는 배를 함께 그린 작은 그림으로, 그래도 이전 그림보다는 본 모습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제홍은 옥순봉 바로 옆에 있는 구담봉도 그림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윤제홍 <구담봉도龜潭峯圖> 종이에 먹, 28.5×42.5cm, 개인 소장



구담봉 모습
구담봉은 물 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의 봉우리이다.


무덤덤하게 쓴 듯한 제발, 실경과는 거리가 있는 산수의 재해석 등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구담봉도>의 화제로는 옥순봉과 구담봉을 유람하고 느낀 점을 썼습니다. 좌측 하단에 이윤영이 세운 창하정蒼霞亭과 선유객을 태운 배가 그려져 있는데, 윤제홍은 이곳에서 구담봉을 바라본 것 같습니다만, 그림에 표현된 모습은 배에서 본 모습과도, 정면에서 본 모습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옥순봉도>에서처럼 구담봉을 다섯 개의 분리된 봉우리들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구담봉을 “웅장하고 막힘이 없다.”고 평을 하였지만 지두화법으로 표현한 봉우리는 별로 웅장한 느낌을 주지는 않네요.

蒼霞亭望龜潭 余嘗云 玉筍淸秀 龜潭雄渾 壺天特一
奇格 丹陵題名又一奇 覽者以爲如何
濟弘景道 作.
창하정蒼霞亭에서 구담봉을 바라보면서
내가 예전에 
“옥순봉은 맑고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고,
구담봉은 웅장하며 막힘이 없다.
별세계 같이 특별하고 기이한 격을 지녔으며
단릉丹陵(이윤영李胤永)이 자신의 호를 그렇게 칭한 것 또한
하나의 기이한 일이다.”
라고 한 적이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제홍濟弘 경도景道 씀.


이분이 몇 번의 유배와 괴로운 생애에도 불구하고 80 넘어서도 손끝으로 과감한 그림을 그리며 장수하시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산수를 즐기고 풍류를 즐기고 내멋대로 해석하고 기분 좋게 사셨기 때문인 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힐링은 자연과 예술에서.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17.05.28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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