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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임의 기록 <누각아집도>
  • 2103      


이인문 <누각아집도> 1820년 지본수묵담채 86.6x57.6cm 국립중앙박물관(德5085)


요즘 친구들끼리 모임을 가지게 되면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SNS에 감상과 함께 올려놓는 일이 많습니다. 즐거웠던 한 때를 남겨 추억하고, 다른 이들에게 슬쩍 자랑도 합니다. 유명인들인 경우 순식간에 공유되어 일파만파 퍼져나가기도 합니다. 
이인문의 <누각아집도>를 보면서 서로 만나면 흥이나고 편안한 이들의 모임을 기록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인문(1745-1824)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궁중화원입니다. 김홍도와 같은 시기이고, 산수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정선의 화풍을 따른 <단발령망금강> <총석정도> 등이 대표작인데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산수화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누각아집도>도 실경을 그렸을 거라고 추측은 되지만 실제 닮은 곳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그림 안에는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중 누각에 모인 이들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겠지요. 동자 빼고 네명입니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떤 관계일까요? 다행히 그림 상단에 써 있는 화제에 이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古松幾株流水貫其中
고송 몇 그루에 흐르는 물이 그 가운데를 지나니
蒼蒼冷冷 滿谷生風
푸르고 차갑구나 골짜기 가득히 바람이 일어
穿然軒牕 雲霞玲瓏之間
탁 트인 누각 창에 아지랑이 영롱한 사이에
倚几而展軸者道人
책상에 기대어 축을 펴는 이는 도인이오,
手把畵箋而佇觀者水月
손으로 그림 종이를 잡고 우두커니 보는 이가 수월이요,
抛琴倚欄者周卿
거문고를 놓아두고 난간에 기댄 이는 주경이오,
踞凳而長吟者潁叟也
걸상에 걸터앉아 길게 읊조리는 이가 영수이니,
此四人可敵七賢
이 네 사람은 죽림칠현에 필적할만하구나.
然忽於苔徑溪畔
그런데 문득 이끼 낀 길 시냇가에
談笑而聯翩者誰歟
이야기하며 나란히 나타나는 이들은 누구인가?
此亦傑氣中人
이들 또한 뛰어난 기풍이 있네.
道人七十六歲翁畵
도인 76세 늙은이가 그림을 그렸고
水月觀 潁叟證 周卿評
수월이 보았으며 영수가 증명했고 주경이 평하였다.
時庚辰淸和月
때는 경진년 청화월이다.


네 명 모두 생존했던 인물이었나 봅니다. 누구인지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① 도인(道人 이인문) 
화제 맨 마지막에 보면 76세 도인 늙은이가 그림을 그렸다고 되어 있으므로 도인은 이인문 화가 본인을 가리킵니다. 그림에서 맨 왼쪽에 책상에 종이를 펼쳐놓고 있는 사람입니다.

② 수월(水月 임희지)
이인문 옆에 종이를 잡고 보는 사람은 스스로를 수월도인(水月道人)이라고 부르고 다녔던 문인화가 임희지(1765~1821?)입니다. 조희룡을 그를 두고 "사람됨이 강개하고 둥근 얼굴에 뾰족한 구레나룻을 가졌으며, 키는 팔척으로 후리후리한 그의 외모는 도인이나 신선과 같았다"고 하는데, 화면에 이러한 외모가 드러나는 듯합니다. 역관 출신으로 중인출신 문인 모임인 "송석원시사"의 일원이었습니다. 술을 좋아하여 간혹 밥 먹는 것을 폐하고 며칠씩 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근역서화징에서는"피리를 잘 불어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이 가난해 특별한 보물은 없었으나 거문고, 칼, 거울, 벼루는 갖추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웃집 아이에게서 얻은 거위 깃털로 옷을 엮어 입고 달 밝은 밤이면 쌍상투를 틀고 신발도 벗은 채 생(笙)을 빗겨 불며 네 거리를 걸어 다녀 순라꾼이 놀라 달아났다는 기록이 호산외기에 있기도 하니 기인이라고 불러도 될 듯합니다.

③ 주경(周卿 김영면)
누각아집도의 화제를 쓴 주경이라는 인물은 오른쪽 끝 난간에 기대어 있습니다. 자가 주경(周卿)인 단계 김영면(丹溪 金永冕 생몰연도 미상)이라는 사람인데, 역시 조희룡은 그를 두고 "용모는 부녀같았고 숨결은 난처럼 향기로웠다. 시를 첫 번째, 글씨를 두 번째, 그림을 세 번째, 거문고를 네 번째로 잘하였다. 시와 글씨의 정신이 거문고와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으니 거문고와 그림은 티끌 세상을 초월하고 세상의 속된 것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무릇 시와 글씨와 거문고와 그림을 다 잘하는 자는 주경 한 사람으로서 동서남북에 통한다"고 극찬을 마지않았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책도 내고 전시도 하고 기타도 좀 치고 외모도 받쳐주는문화예술계 셀럽 정도 되지 않을까요? 

④ 영수(潁叟)
문제는 걸상에 앉아 멍하니 물을 바라보는 이 '영수'라는 인물입니다. 
미술사학자들도 이 인물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임노, 서영수, 신위, 남공철 등의 인물이 후보에 올라 있습니다. 영수가 누구인지 확실히 밝혀졌다면 더 재미있겠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시와 그림으로 서로 깊게 마음을 나누던 모임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인문은 이 작품을 1820년, 즉 76세에 제작합니다. 1824년에 돌아가셨으니 최만년작입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 무엇이었겠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인문은 시와 음악과 그림을 친구들과 나누며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면서, 여기에 적절한 시를 그가 지어 써 넣지는 않고 함께 자리에 있던 주경, 김영면에게 맡깁니다. 
글씨를 쓰는 것에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요? 이인문은 다른 그림에도 글씨를 남긴 일이 없습니다.


이인문 그림 김홍도 글씨《송하한담도》109.3x57.4cm 180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나무 아래에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눈다는 제목의 그림인데 이인문이 그림을 그리고 동갑내기 친구 김홍도가 글씨를 맡았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화제에 인물의 구체적 이름까지 거명했으면서도 인물의 표현은 중국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식 의상으로 그리면 그것은 속화처럼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화제에서 볼 수 있듯이 네 등장인물을 죽림칠현에 비견했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기존 중국 그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자신의 친구 김홍도를 넘어서지 못한 부분 중의 하나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김홍도는 시와 그림에 모두 뛰어난, 시대를 대표할 만한 예술가였지만, 이인문은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은 그에 다다랐을지 모르나 나머지 부분에서는 모두 그 이상이 되지 못했던 듯 합니다. 

김홍도와 이인문은 혹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같은 관계였을까요? 허구적 역사 드라마가 유행하다보니 별별 상상이 다 떠오릅니다.





글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17.11.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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