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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결의 달인 - <고사세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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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업, <고사세동도> 19세기 후반, 종이에 연한 색, 151.2x31cm 삼성리움미술관

넓은 잎을 가진 나무 한 그루가 그림의 반을 차지합니다.
그 나무 위로 한 소년이 올라가는 듯한 모습인데, 자세히 보니 소년의 손에는 수건처럼 보이는 천조각이 들려 있습니다.
하단에는 중년의 남자가 소년을 가리키며 뭔가 지시하는 듯이 보입니다.
이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이야기일까요?

<고사세동도> 부분

상단에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라고 써 있으니, 선비(高士)가 오동나무를 씻는(洗桐)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네요. 그림은 장승업이 그렸지만 화제는 장승업의 제자인 심전 안중식이 썼습니다.(개인적으로는 글씨가 너무 그림을 답답하게 만드는 듯이 느껴집니다. 다른 글씨 다른 화제였으면 어땠을까요)

세상에 나무를 다 씻는 걸 보니 이 분 어지간히 깔끔한 사람이겠구나.. 라고 생각하셨다면, 정답입니다. 아래의 선비가 깨끗한 것을 좋아하셨던 유명한 분으로, 옷차림으로 알 수 있듯 중국 어르신입니다.

장승업이 그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중국의 원말 문인사대가 중 한 사람인 예찬(倪瓚, 1301~1374)이라는 사람으로, 깔끔을 떠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고사세동도> 부분

오원 장승업은 옛 성현의 재미있는 일화나 이야기를 그림으로 많이 그렸습니다. 19세기에 많이 퍼졌던 이야기책들, 고전 문인화의 유행은 서로 연관이 있을 듯합니다.

하여간 이분은 화장실도 유별나게 써서 발판은 향나무로 만들고 자기가 봤던 변을 보기조차 꺼려 화장실 인분 위에는 거위 털을 엎어 가려 놓았답니다. 지금이야 뭐 그럴 수 있다지만 원나라 때의 중국의 일반적인 화장실 상태를 상상해 볼 때 이러한 광경은 흔치 않았겠지요.

불결하다는 이유로 여색도 가까이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라도 교양없이 굴면 서슴없이 뺨을 때릴 정도로 성깔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언제나 깨끗이 손질한 흰 옷을 입고, 버선도 하루에 몇 번씩 갈아신었습니다.

그의 시동들은 청소와 빨래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그의 엄청난 잔소리를 견뎌야 했을 거 같습니다.


작자미상, <예찬 초상>, 종이에 색, 28.2x60.9cm,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
옆에 빗자루를 든 시동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 시녀가 들고 있는 것은 행주나 걸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뜰에 있는 오동나무는 하인들을 시켜 매일 깨끗이 씻도록 했는데, 어느 하루 친구가 왔다 간 후에 다시 씻으라고 시켰답니다. 어리둥절해진 시동이 이유를 물으니, 친구가 들렀다 나가면서 재채기를 하여 침이 묻은 때문.

그림에서 시동이 표정이 심드렁한 것에서 오히려 장승업의 세련된 유머감각이 감지되기도 합니다.

예찬은 유명한 문인화가이니 그의 결벽증만 논하고 말기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인 <용슬재도>입니다.


예찬, <용슬재도>, 원, 1372년, 종이에 먹, 74.7x 35.5cm 타이페이 국립고궁박물원

깔끔한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멀리 나지막한 산 아래에 물이 흐르고, 전경에 나무가 몇 그루와 함께 심플한 정자가 있습니다. 사전에는 그의 화풍에 대해 “산수화는 동원, 거연의 화풍을 배웠으며 갈필에 의한 적료무인의 ‘소산체(簫散體)’라 불리는 간원(簡遠)한 평원(平遠)산수의 양식을 확립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갈필은 붓에 물기가 많지 않도록 하여 조금 건조한 듯이 그리는 기법으로, 이 <용슬재도>의 나무와 바위도 갈필에 의해 가로로 뻗은 준법이 그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다음은 장승업의 또다른 세동도 작품입니다. 위에 보여드린 것과 방향과 고사의 모습이 상이합니다.


장승업, <세동도>, 138x31.5cm 견에 먹 담채 

 

또다른 세동도를 볼까요?

이 글이 작성되고 있는 중인 2012년 9월 21일 한 경매회사의 미술품 경매에는 다음과 같은 작품이 <신선도>라는 이름으로 출품되었습니다.


소송 한승리(?-?), <신선도>, 133x33cm, 천에 수묵담채

상단에 '세동식죽(洗桐拭竹)' 즉 '오동나무를 씻고 대나무를 닦는다'고 써 있으니 예찬의 고사를 표현한 그림이 분명합니다. 세동식죽도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 하네요. 조선 말기에 이 일화는 생각보다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
예찬(倪瓚, 1301~1374)
원대 남종화의 대표적 화가이자 시인.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운림거사 또는 운림산인. 풍족한 가산 덕분에 집안에 청비각을 지어놓고 골동품 수집에 몰두하는 한편, 사방에서 몰려든 명사들과 교류했다. 그 후, 원순제 지정 연간(1341~1368)에 병란을 예상한 그는 친척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준 뒤 고깃배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

명대에 접어들어 예찬은 일부러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쏭강, 쑤저우, 태호 일대를 유랑하면서 시와 산수화 창작에 몰두했다. 중국 남종화의 시조격인 거연과 동원 화풍을 계승한 그의 그림은 당시 찾는 이가 많아 오랫동안 위작이 성행했다. 그러나 예찬 특유의 적막하고 담백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화가는 없었다고 한다. 간결하고 세련된 그의 화풍은 명대 초기의 왕불, 중기의 문징명, 후기의 홍인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0.04.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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