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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와 활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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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여러 가지 금속활자를 사용했습니다. 가장 먼저 만든 활자가 계미자(1403)로, 역시 계미자로 만든 책이 현재도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곤 합니다. 그 다음은 경자자(1420)인데, 계미자나 경자자 등은 중국 송나라 때의 목판본 글씨(송판)을 이용하여 주조한 활자입니다. 

  송판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 일본 세카이도(靜嘉堂)문고입니다. 미쓰비시 그룹에서 만든 미술관인데, 이 미술관이 송나라 판본 책을 많이 가지게 된 연유는 20세기 초에 미쓰비시 총수가 행동력을 발휘한 데 있습니다. 그는 중국 청나라 말기 4대 장서가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육심원(陸心源 1838-1894)의 장서를 자손이 판다는 소문을 듣고 육심원의 수장품을 살펴보게 하기 위해 학자들을 보내어 6개월 동안 목록 작업을 하고, 알짜배기만을 모아서 돈을 후하게 치르고 절강성 쪽에서 조용히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돈을 주고 정당하게 산 것이지만 중국에 알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송나라 판본의 책은 지금 한 권에 일억 엔 정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태백문집』남송(1127∼1279), 전12책 28.0x17.7cm 중요문화재


계미자와 경자자(庚子字)는 이러한 중국 송나라의 목판본 책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이후 세종은 갑인자(1434)를 만들도록 하는데, 이 갑인자는 1434년에 찍은 초주갑인자를 시작으로 임란 전인 1580년에 한 번(경진), 광해군 때(1617, 무오) 한 번, 현종 때(1668, 무신) 한 번, 영조 때(1772, 임진) 한 번, 마지막으로 정조 때(1777, 정유) 한 번 이렇게 총 여섯 번을 찍어내었던, 가장 많이 사용한 활자 중 하나입니다. 가히 조선시대 중심 활자라고 할 만합니다. 각각이 갑인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서 비슷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상설고문진보대전> 21.5x31cm 초주갑인자


  갑인자 또한 그 원본은 중국의 『효순사실(孝順事實)』과 『위선음질(爲善陰騭)』 등의 책 글자를 이용해 만들었습니다. 길쭉하면서도 멋있는 송설체와 유사한 글자체로, 그러한 모양새가 우리 조선시대의 중심 글씨 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갑인자와 함께 많이 쓰였던 을해자는 이에 비해 다소 살찌고 펑퍼짐한 모양입니다. 

  갑인자가 가장 많이 사용된 활자라 의미있다면 가장 희소가치가 있는 것은 경오자(1450)로 찍은 책입니다. 경오자는 안평대군의 글씨로 만든 것으로 갑인자와는 반대로 한 번 밖에 안 만들었습니다. 『고금역대십팔사략(古今歷代十八史略)』『고문진보』『역대병요(歷代兵要)』『신편산학계몽(新編算學啓蒙)』 등이 남아 있습니다. 경오자는 세조가 안평대군의 흔적을 없애고 싶었는지 즉위하던 해에 이 경오자 활자를 녹여 을해자(1455)를 만들어버립니다. 활자를 없애버려 더 이상 찍을 수 없었으므로 경오자로 찍은 책들이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경오자로 찍은 책들은 대개 3천만원에서 5천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상설고문진보대전> 경오자  보물 제967호


  안평대군의 글씨로 만든 활자와 같은 운명이 된 것이 안평대군의 컬렉션이죠. 이전 안평대군 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 흩어져버린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광국의 소장품처럼 몇몇 작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를 바탕으로 찾아나갈 수 있을 텐데, 안평대군 소장품은 흔적이라곤 목록 뿐입니다. 일제 때나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을해자는 앞서 말했듯 강희안의 글씨로 만들어진 활자로 실물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남아 전해지는 을해자본의 책만 해도 백 몇 십권에 이릅니다. 

  1970년대에 저 같은 경우, 돈이 조금 궁해지면 만원이나 이만원 정도를 들고 청계천으로 나갔습니다. 당시 청계천 가장자리에 수십 곳이 있었던 헌책방들은 주로 학기가 시작하기 전 중고 교과서 장사로 쏠쏠히 돈을 벌었습니다. 여기 가면 교과서와 일반 단행본들 사이에 고문서가 섞여 있습니다. 옛날 책들이 수북히 산처럼 쌓여 있고, 한 권에 오백 원이나 천 원을 받고 팔았습니다. 일반사람들은 어떤 책이 귀하고 흔한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헌책방 주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활자본들을 죽 살펴보고 귀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섞어서 한꺼번에 만원을 주고 열 댓 권을 사올 수 있습니다. 


  살펴보다 보면 그 안에는 을해자로 찍은 『동문선』같은 것들을 발견하여 끼워 넣을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은 당시에 한 십만원 정도 합니다. 목판본이라도 한 권에 만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다가 제대로 팔아 용돈 벌이를 할 수 있었죠. 가끔 쌓여 있는 책을 들춰보다 안에 끼워져 있는 지폐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모른척 하고 덮은 후 책을 삽니다. 이때 낱권으로 사면 안 됩니다. 얼른 덮어 한꺼번에 여러 권을 사야 주인이 책을 주루룩 펴서 살펴보다 지폐를 발견해 빼내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귀한 책을 얻고 그 안에 지폐도 들어 있는 날은 기분이 꽤 괜찮은 날입니다.
  벌써 사십년에 가까운 옛날 얘기긴 하지만, 고문서를 다루는 곳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조금더 갖추고 판매상들이 공부를 좀 했으면 돈도 벌고 전문적으로 고문서를 다루는 책방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학기 교과서를 트럭으로 가져다 팔고 봄 가을 두 철 장사로 한 해를 편히 지내며 먹고 살았습니다. 그 중 몇몇은 그 때 번 돈으로 출판사를 차려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고 심지어 책을 사들였다가 교과서 개정되어 바뀌면 큰 손해를 보기도 했죠.

 갑인자로 찍은 책 중에서 『고려사절요』같은 것은 초주갑인자이기도 하고 우리 역사를 다룬 중요한 내용이라서 꽤 여러 권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권에 2천만원에서 3천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다른 갑인자 책은 현재 한 권에 약 천 만원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같은 활자본이라도 초주갑인자 중국 <사기>라든가 그러면 귀하게 여겨지고, 그런데 여기에 우리 역사가 들어 있는 부분이거나 우리와 관련되면 그 권만 값이 확 뜁니다. 신숙주가 편찬한 『해동제국기』중에서 금속활자가 아닌 목활자본으로 찍은 것이 있는데, 을해자체로 된 목활자로 그 가치가 인정되어 2010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적도 있습니다. 이 책은 가격이 일억을 호가합니다. 


<해동제국기>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사실 우리 내용을 담고 있건 그렇지 않건 소중한 활자본이면 유사한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문서를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왕이면 우리의 역사를 다룬 책을 더 가지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말입니다. 

김영복 관리자
업데이트 2017.12.1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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