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골기를 가진 그림과 글씨, 이인상 2022.04.24
이인상(李麟祥 1710-1760)알다시피 추사 김정희는 까칠한 양반이어서 남 칭찬을 잘 안 하는데, 윗세대 선배들 중 유일하게 칭찬한 사람이 능호관 이인상입니다. 그의 글씨는 예서나 해서도 좋지만 전서 또한 아주 좋아서 당대 전서는 제일인자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이인상의 전서. 당나라 가도의 <...
소론의 글씨 (4) 조윤형, 서무수, 서명균 2022.03.04
조윤형(曺允亨, 1725-1799)백하 윤순의 제자 이광사, 그리고 그 이광사를 제자 조윤형이 이어갔습니다. 다만 이광사의 글씨보다 조윤형의 글씨가 좀더 윤 백하의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무엇 때문인지 조윤형이 백하 윤순의 사위라고 전해지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이광사는 스승으로부터 해서 ...
소론의 글씨 (3) - 이광사 2022.01.12
이광사(李匡師, 1705-1777)대대로 판서 이상의 벼슬을 지낸 명문가 집안의 이광사. 장남은 연려실기술의 저자 이긍익입니다. 친가 외가 처가 모두 소론이었으며, 소론의 몰락으로 23년의 유배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글씨가 유배지에서 쓴 것입니다.신한평 <이광사...
소론의 글씨 (2) - 백하 윤순 2022.01.12
백하 윤순(1680-1741)윤 백하는 글씨뿐만 아니라 글도 잘 짓고 성격도 활달했다고 전해지며, 소송 같은 긴 문서들을 슥 보고 외워 옮겨 적고 몇 십 건 처결을 바로바로 내렸다는 일화도 있는 만큼 머리도 좋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집안도 좋고 스스로 직책도 높았습니다. 대제학, 요즘으로 치자면 서울대...
소론의 글씨 (1) 당색이 얽힌 집안들 2021.12.15
노소론이 얽힌 집안들우암 송시열을 위시한 노론의 글씨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이제 소론의 글씨에 대해 짚어봐야겠네요. 서예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 즉 ‘누구누구체’라고 이야기할 정도가 된다면 당색이 크게 의미 없지만, 일반 학자나 선비들은 스승이나 주변 사람들의 글씨를 따르게 되어 글씨에 당색이 비쳐지...
우암과 미수의 사람과 일화 2021.11.01
우암 송시열은 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던 듯 동뇨(童尿)를 먹었다고 하지요. 어린아이의 오줌, 즉 동뇨는 한의학에서 약재로 쓰는데, 몸에 좋다고 찾아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오줌을 끓여서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고 반짝이는 알갱이, ‘추석(秋石)’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혈관을 깨끗하게 하는 ...
미수 허목의 글씨 2 - 전서를 닮은 해서 2021.10.11
미수의 해서체미수 허목은 전서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전서 쓰는 법을 적용해서 쓰는 해서 또한 아주 좋습니다. 그의 해서체는 전서 식으로 쭉쭉 내려 힘 있게 쓰는 글씨로 이를 찾는 이들이 꽤 있어 현재도 그의 간찰들이 종종 시장에 나와 거래되곤 합니다. 미수의 해서와 행서는 전서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글...
미수 허목의 글씨 1 - 전서 "미수체" 2021.09.08
우암의 라이벌, 미수 허목과 묵재 허적우암 송시열의 맞은편에 있는, 당시 밀접한 관계가 있던 인물들인 미수 허목, 묵재 허적, 백호 윤휴 등의 인물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먼저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 그는 정치나 역사, 유학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서예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
송시열의 후예 - 노론의 글씨 2021.08.02
숙종 이후 남인이 몰락하고 나자, 노론이 소론과 대립하면서 정계를 이끌어나갔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소론이 이끌었던 이인좌의 난을 누르고 노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됩니다. 영․정조 시대 탕평책으로 그 이전과 같은 붕당의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19세기 이후에도 송시열에 의한 배타적 성리학을 밑바탕에 깔고 ...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 2021.06.08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율곡 라인에서 등장했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서인의 중요 인물이자 성리학자로 사후에도 노론에 의해 그 지위가 확고해질 수 있었던 두 사람. 이들의 글씨에 대해 조금 더 짚어볼까 합니다.김창업 화畵...
설암체와 조선의 서체 유행 2021.04.30
한문 공부를 시작할 때 천자문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 시대의 서체 취향을 반영하게 되기도 하지요.여러 천자문이 있지만 석봉의 천자문은 이 땅의 한자 서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추사 글씨로 된 천자문도 꽤 있는데 대부분은 모간...
조선을 대표하는 서예가 석봉 한호 2 - 한석봉 천자문 2021.04.05
한호 주변의 인물당대에 글과 글씨 잘 쓴 사람들을 묶기 좋아했던 옛 사람이 개성 출신의 세 사람을 송도삼절 또는 개성삼절이라고 불렀는데, 한호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송도 삼절에서 글씨는 한석봉, 문장은 간이 최립(崔岦, 1539-1612), 시는 오산 차천로(車天輅 1556-1615)가 됩니다.최립은 한...
조선을 대표하는 서예가 석봉 한호 1 - 선조가 사랑한 서예가 2021.04.02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를 딱 한 사람만 택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석봉, 즉 석봉 한호(韓濩, 1543~1605)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평가 기준에 따라 순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가장 유명한 서예가로는 한석봉이 유력합니다. 조선 초기 안평대군의 글씨는 영향력이 큰 당대의 명필이었으나 정치적 핍박...
율곡 이이와 그의 라인 2021.03.05
퇴계 이황과 함께 16세기 조선의 학자를 대표하는 이로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가 있습니다. 두 사람을 영남학파, 기호학파라고 하면서 둘이 라이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율곡 이이는 퇴계보다 35살이나 어리고 율곡이 23세 때 처음 만나 성리학에 대해 논했을 뿐 딱히 경...
퇴계 이황과 그의 제자들 2021.01.29
다시 한참 위로 올라가서, 그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은 퇴계 이황의 삶과 글씨, 그리고 그의 제자들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학자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천 원짜리 지폐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퇴계 이황(李滉 1501-1570) 아닐까 싶습니다.이황 <오언율시&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