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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0. 기메의 한국미술 간판인 (전)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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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실은 바라와 콜랭 그리고 이우환, 이타미 준 등의 기증이 있었지만 그림만 보면 그 수자는 턱없이 적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파리의 동양미술 시장에는 조선그림이 소개된 적이 거의 없었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또 바라나 콜랭이 구했던 것이 조선의 민족지학적인 자료였던 까닭도 있다.
 
민족지학(Ethnograghy)은 현지 조사에 바탕으로 어느 한 민족의 사회 조직이나 생활양식 전반에 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밝히려는 학문이다. 민속학과는 뉘앙스가 조금 달라 인류학 쪽으로 분류되는 학문이다.
 


작자미상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105x58cm 

아무튼 그런 방향에서 시작된 컬렉션이어서 서화는 양도 많지 않을 않을뿐더러 있더라도 풍속, 종교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거의가 구한말에 속하는 민화, 풍속화, 신장상, 불화 등이다. 불화 중에는 시대가 올라가 고려시대의 것으로 아미타여래도 2점과 수월관음도 1점이 들어있는 것이 이채를 띤다.

그 중 수월관음도는 1993년 호암미술관의 고려불화특별전에 들어와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외 초상화로 순조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일찍 죽은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만영(趙萬永 1776-1846)의 반신상을 이한철이 그린 것이 있다.


이한철 필 <조만영 초상> 51x38cm

이외에 또 볼만한 그림으로 김홍도(金弘道 1745-1806 무렵)와 이명기(李命基 1756-1813 이후)의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명기 그림부터 먼저 보면 초상화가로 이름난 그로서는 의외라 할 수 있는 군마도가 있다. 이명기는 정조에서 순종에 걸쳐 화원으로 활동하면서 초상화의 명수로 불렸다. 실제 남아있는 그림의 상당수도 초상화이다.

그는 단원 김홍도와 가까웠다. 단원은 도화서의 대선배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일찍 죽은 장인인 화원 김응환(金應煥 1742-1789)와는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 점에서 단원은 이명기에게 멘토적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단원의 스승인 강세황의 초상을 이명기가 그린 적이 있다. 또 어느 고관(그는 서직수이다)의 초상화를 그릴 때에는 김홍도와 합작을 하기도 했다. 이때 초상의 명수인 그가 얼굴을 그리고 얼굴아래 부분은 단원이 담당했다.    


이명기 <계변군마도> 지본담채 118x56cm

이렇게 가깝게 지내면서 그는 많은 것을 단원에게 배웠다. 그가 남긴 산수화는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지만 단원 화풍이 쉽게 느껴지는 그림들이 많다. 그래서 넓게는 단원 화파(畵派)로 분류된다.  

그런 그가 말을 그렸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이다. 서울에는 그가 그린 말 그림이 한 점도 전하지 않는다. 이 그림은 오래된 버드나무가 그림 중앙 한 쪽에 서 있는 물가가 배경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나무를 보면 흔히 느껴지는 단원 화풍과는 거리가 멀다.

말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아래 위에 그려져 있다. 모두 10마리나 된다. 달리는 말에서 누워 털을 고르는 말까지 포즈가 다양하다. 하지만 말의 동작, 포즈가 탁월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어딘가 비례가 고르지 못한 느낌이 있다. 이 그림은 콜랭이 한국을 처음 찾은 1887년에 서울에서 구한 것이다. 기메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트로카데로 성의 민족지학 박물관이 있었다.

기메에 있는 조선 명품으로 으레 거론 되는 것이 김홍도 그림이다. 그의 풍속도 병풍인데 이 그림 역시 늘 꺼내 놓고 전시하는 그림은 아니다. 한국에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나 2010년 겨울의 상설 전시에 나왔을 때 이를 직접 보았다.


전 김홍도 <노상송사(路上訟事)<풍속도 병풍 중) 견본채색 각 100x48cm
5) 김홍도 <노상송사> (행려풍속도 병푸) 국립중앙박물관

어쨌든 이 그림은 탁월하게 정교하다. ‘김홍도니까 그렇겠지’라고 하겠지만 솔직한 답은 김홍도를 넘어서는(?) 부분도 적지 않다. 집이며 담장, 의복, 사람의 얼굴 등 서울의 어느 단원 그림에서도 볼 수 없는 정교한 필치가 구사돼 있다. 김홍도가 늘 핸디캡으로 여긴 얼굴 묘사도 붓의 망설임이 전혀 없이 여간 뛰어나지 않다.

특히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복이나 주변 배경 묘사는 탄복할 정도이다. 두 번째 폭인 <기방 쟁웅>에는 댓돌 위에 벋어놓은 신발이 삐뚤게 놓인 것을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또 등장 인물의 복장은 마치 혜원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의 그것처럼 치밀하다.


전 김홍도 <기방쟁웅>

이 그림 내용의 몇몇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김홍도 34살 때의 풍속도 병풍과 내용이 같다. 예를 들어 노상송사(路上訟事)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둘을 비교하면 기메 쪽이 서울 쪽보다 열배쯤 더 정교해 보인다. 태수 앞에서 작대기를 짚고 있는 이방의 까치등거리 같은 것을 보면 그 정교함에 ‘혹시 혜원이 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반면에 기생집 앞에서의 남자들이 다투는 장면, 개천가에서 점 치는 장면, 담장 안 후원에서 연회를 벌이는 모습, 눈 속에 길을 떠나는 일행 그리고 눈 내린 가운데 소나무 밑에 둘러 앉아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 등은 김홍도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재들이다. 오히려 김홍도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풍속화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전 김홍도 <설후야연>

정교함과 생소함이 뒤섞여 있는 이런 혼란에 대해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더욱이 이 그림에 적혀 있는 ‘金弘道(김홍도)’라고 한 낙관도 다른 그림에 보이는 글씨체와도 많이 달라 보여 혼동을 부채질한다.

아무튼 이 그림이 기메에 들어온 것은 1961년이다. 기증자는 루이 마랭(Louis Marin 1871-1960)의 미망인이다. 루이 마랭은 프랑스 정치가이자 민속학자이다. 그는 로렌지방 출신으로 낭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30년대 중반 보건 장관을 지냈다.

독서가였던 그는 민속지학회의 회원이기도 해 따라서 많은 여행을 했다. 그 곳에는 젊은 시절 여러 차례 한 동양 여행도 들어있다. 특히 1901년에는 육로로 시베리아를 거쳐 만주, 조선 그리고 북중국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가 이 조선 여행에서 김홍도 그림을 구했는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1960년 5월23일 파리에서 89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림이 미망인에 의해 기증된 것은 그 다음 해이다.

단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지만 이 그림은 아직 한 번도 고향 나들이를 한 적이 없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만일 서울방문이 실현된다면 단원인지 아닌지의 문제 역시 그때 한층 분명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기메는 흔히 프랑스 동양미술의 보고라고 불리지만 이처럼 한국 서화는 중국과 일본과 달리 많이 영세하다. 근래 이우환과 이타미 준 등의 노력이 있었지만 이는 런던이나 뉴욕에 댈 것이 아니다. 대영박물관이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는 한국의 기업가들이 거액의 기부를 통해 한국문화를 업그레이드해 소개하는 기회를 맞고 있다. 유럽 대륙을 대표하는 동양미술관 기메에도 그와 같은 호기가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12.1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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