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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 마리 앙트와네트 칠기와 남만 체스트의 일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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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메의 일본미술 컬렉션은 기메 수집품과 루브르에서의 귀속품 그리고 이후에 기증 받은 유물로 크게 3등분 할 수 있다. 기메의 일본미술수집 역사는 매우 깊다. 기메가 종교에 방점을 둔 박물관을 리용에 처음 세웠을 때부터 일본 미술품을 전시하는 별도의 방이 있었다.
 
그는 1876년 9주일 동안 일본을 여행하면서 종교적으로 큰 감명을 받았다. 도처에 볼 수 있었던 불교 사찰들이 그가 꿈꾸던 종교사 박물관의 꿈을 더욱 부풀렸다. 때마침 충분히 수집의 가이드북이 될 만한 지침서를 손에 넣었다.

『불상도휘(佛像圖彙)』란 책으로 이는 교토에서 불화(佛畵)관련 직업화가인 도사 히데노부(土佐秀信)가 1690년에 펴낸 것이다. 전5권으로 된 이 책은 부처, 보살 이외에도 불교의식에 쓰이는 도구는 물론 당시만 해도 사찰에서 함께 모셔진 신도의 신상(神像)까지 설명을 곁들여 그림으로 자세히 소개돼있다. 이 책은 불상이나 불화의 전문 제작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리옹 기메미술관의 중앙홀 모습

기메는 일본에 도착해 이 책을 손에 넣고 이를 기준 삼아 불상을 수집했다. 그는 리용 시절 교토 도지(東寺) 절에 있는 만다라 형식의 21구의 불상을 그대로 복제해 전시해 놓기도 했다.
 
루브르에서 건너온 유물들은 19세기후반 파리에 자포니즘의 열풍이 불 때 기증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주역인 보석상 앙리 베베르, 일본미술 전문의 화상 사무엘 빙, 미술사가이자 편집자였던 루이 공스, 인쇄소경영자 샤를 지로 그리고 기업가이자 컬렉터였던 알렉시 루아르 등이다.

이들은 1893년과 9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본미술품을 기증했다. 그후에 루브르의 친구들회의 회장인 이삭 카몽도 역시 자신이 모은 일본 미술을 1897년과 1903년 두 차례에 걸쳐 기증했다.


스즈키 하루노부 <마루 끝에 선 미인(縁先美人)> 27.5x20.7cm

이 둘 갈레의 유물이 1945년에 합쳐졌다. 그리고 새로운 기증품이 들어오면서 기메의 일본 컬렉션이 완성됐다. 일본 미술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풍성하다. 장르도 불상에서 공예품, 서화, 우키요에까지 다양하다.


일본미술품을 소재로 한 마그넷

하지만 이곳도 서화나 우키요에는 극히 소수만 상설 전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키요에 컬렉션은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로 높은 수준과 수량을 자랑한다. 기메의 기프트숍 계산대 앞에는 우키요에를 테마로 한 수십 종의 마그넷이 판매되고 있다.  

루브르 전래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수집한 일본 칠기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물부용문 칠기반이다. 바닥 부분에 부용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주변 부분에는 늘어진 매화나무 아래에 산사를 참배하는 인물이 금박으로 그려져 있다.


마리 앙트와네트가 애장했던 인물부용문 칠반, 17세기말
 

마리 앙트와네트는 루브르에서도 소개했듯이 일본 칠기의 팬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일본의 칠기 소품을 많이 모았다. 이들 소품은 베르사이유궁 박물관의 프티 트리아농에 소장돼 있다.
마리 앙트와네트가 그랬듯이 17, 18세기 유럽에서는 도자기만큼이나 일본 칠기도 환대를 받았다.

‘재팬’이란 말이 곧장 칠기를 가리킬 정도였다. 이런 칠기 유행을 유럽에 처음 전한 것은 해적선의 보물 상자처럼 생긴 남만(南蠻) 체스트이다. 남만이란 일본에 온 포르투갈인과 그들의 문화를 가리키는 일본어이다.

남만 체스트는 나전 기법에 일본 독자의 마키에((蒔繪)기법을 더해 만든 궤(櫃)를 말한다. 마키에 기법은 나전에서 칠 위에 조개껍질을 붙여 가공하는 것과 원리는 같다. 조개껍질 대신 금분이나 은분을 뿌린 뒤에 이를 곱게 갈아 황금빛과 은색을 냈다.


16세기 후반 무역선을 타고 일본에 온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검은 바탕에 황금빛을 발하는 마키에 공예에 매료됐다. 그들은 이를 가지고 예배 용구를 만들어 썼다. 마리아 상을 넣어두는 액자나 성서를 올려두는 탁자를 이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유럽에 건너가면서 일본 칠기가 유럽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등호문(藤虎文) 마키에나전양궤, 16세기후반 길이 130.6cm *보정 필요

포르투갈 상인들은 예배용구 대신 더 상품가치가 높은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남만 체스트이다. 이를 만들면서 당시 일본에 없던 나전 기법이 새로 쓰였다. 나전하면 고려를 떠올리겠지만 에도시대에 새로 전해진 나전은 포르투갈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기법이었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마키에에 자신들의 나전 기법을 더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마키에 나전양궤(蒔繪螺鈿洋櫃)들이다. 이 체스트는 상인들의 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가 왕후귀족들 사이에 고가에 팔렸다. 그런 점에서 이는 근세 초기에 탄생한 일본의 첫 번째 수출 공예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만 체스트는 동양무역의 주역이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로 바뀌면서 급격히 사라졌다. 네덜란드는 체스트 대신 가구제작의 부속재료로 쓰이는 칠기 판을 주문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전하는 남만 체스트는 대부분 모모야마(桃山 1573-1603) 시대를 전후한 약50년 동안에만 제작된 것들이다. 기메의 일본실 한 복판에 이 남만 체스트 한 점이 소개돼 있다.


일본실의 도자기전시 파트

일본실의 도자기는 고대를 포함해 근대까지 체계적인 수집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이 중에는 그랑디디에가 수집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 가운데 볼만한 것은 나베시마(鍋島) 도자기이다.

나베시마 도자기도 계통상으로는 이마리 도자기에 속한다. 하지만 민간 가마에서 수출용이나 민수용으로 제작한 것과 달리 이는 사가번(佐賀藩)의 직영가마에서 만든 것이다. 사가번은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나베시마 가문이 통치했다.  


나베시마 항아리문 접시, 19세기

사가번은 이 가마를 운영하며 번주 사용품 외에 장군 가문과 여타 다이묘(大名)의 선물용으로 쓸 최고급 도자기를 만들었다. 그랑디디에는 이마리 도자기 가운데 가장 늦게 유럽에 알려진 나베시마도 많이 수집했다.

제조에 있어 나베시마는 수출용 이마리 도자기보다 한 단계 위의 수준을 보였다. 더욱이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일본적 문양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인기가 높았다. 기메의 일본실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나베시야 도자기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6.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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