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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 운이 좋아야 얻어 보는 중국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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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메의 중국도자기와 불상은 가히 세계적이다. 하지만 동양미술을 대표하는 서화는 메트로폴리탄이나 대영박물관에 비하면 한 수 접힌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당나라 한간(韓幹)이 그린 <조야백도(照夜白圖)> 말 그림이나 대영박물관에 있는 고개지(顧愷之) 그림으로 전하는 <여사잠도(女史箴圖)>처럼 간판이 되는 그림이 쉽게 연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트로폴리탄이나 대영박물관처럼 대규모 서화특별전이 기획되는 경우도 드물다. 3층 중국도자기 전시실 옆에 작은 회화실이 있는 정도이다. 이곳에 페리오가 수집한 돈황 불화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서화가 소개돼 있다. 이들은 보존상의 이유로 몇 달 단위로 교체돼 전시된다.


호종언 『십죽재화보』(부분)

따라서 기메에서 유명 중국서화를 만나는 일은 운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겨울에 열린 특별전 ‘옥(Jade)’전에 참고자료로 나온 서화를 한두 점을 소개하면 우선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를 꼽을 수 있다.
 
『십죽재화보』는 명나라말 남경출신으로 서화가이자 출판기획자였던 호정언(胡正言 1580-1671)이 펴낸 화보집이다. 여기에는 화조, 동물, 난, 대나무 등을 그리는 다양한 예시가 들어있어 청나라는 물론 조선, 일본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김홍도의 스승으로 유명한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평생 이를 옆에 두고 참고했다고 할 정도이다. 기메의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는 채색본으로 상태가 극히 우수하다.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카자흐 공마도> 견본채색 45.5x269cm

또 다른 그림은 중국이름 낭세녕(郎世寧)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출신의 예수회선교사이자 화가였던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것으로 카자흐족이 건륭제에게 말을 헌상하는 <카자흐 공마도(哈薩克貢馬圖)이다. 이는 그가 70살 때(1758년)에 그린 것이다.

그는 1715년 중국에 와 강희제를 알현한 이래 옹정, 건륭까지 3대를 모시면서 궁중의 화가로 활동했다. 로마에서 그림을 배웠던 그는 일점투시법, 색채원근법과 같은 중국에 없는 사실묘사 기법을 전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 중에는 이런 사실적 기법이 필요한 부분은 그가 그렸지만 산수나 바위 같은 전통 동양화에 해당하는 부분은 청의 궁중화가들이 함께 그리기도 했다. 

그는 평생 중국황제를 위해 그림을 그리다 원명원 안에 있는 그림 작업장인 여의관(如意館)에서 죽었다. 기메에는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그림이 여러 점 전하는데 유명한 것으로 <목란사냥도> <강희제 남순도> <건륭제 남순도> 그리고 그가 밑그림을 그린 판화 <평정 준갈이회부 득승도(平定准喝爾回部得勝圖)>가 있다. 


낭세녕 등 <목란사냥도> 부분

목란에서의 사냥은 건륭제가 만주족의 유목생활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해 1741년부터 개최한 행사로 낭세녕은 건륭제의 사냥장면은 다양한 구도로 여러 번 그렸다. 기메 소장의 <목란 사냥도>는 **에 그린 것이다.

길이 *미터에 이르는 대작은 북경 황궁을 출발해 목란 산장에 도착해 3천명의 몰이꾼들이 호랑이, 사슴 등을 모는 장면에서 황제가 직접 활을 겨누는 장면까지 여러 내용이 들어있다. 낭세녕은 당시 여의관에 있던 다른 예수회소속 서양화가를 포함 중국화가 40명과 이를 공동 제작했다. 
  
낭세녕의 그림 가운데 기메의 도록은 물론 미술관 사이트에도 전혀 올려놓지 않은 특이한 것이 있는데 <강희제 남순도>이다. 강희제는 청제국의 기초를 다진 장본인일 뿐 아니라 당 태종과 나란히 중국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황제이다. 그는 재위기간 중 중국 강남지방을 여섯 번이나 순행했다.

남순도는 제2차 순행때인 1689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각지에서 솜씨 있는 화가들이 전부 베이징으로 불러올렸다. 청을 대표하는 6명의 화가를 가리키는 사왕오운(四王吳惲) 중 한 사람인 강소성 상숙 출신의 왕휘(王翬 1632-1717)도 이때 부름을 받았다.

그는 이 작업 전체를 진두지휘하며 6년에 걸쳐 이를 완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정교한 묘사와 화려한 채색으로 그려진 <남순도> 전12권이다. 각 권은 각각 15미터에서 20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다. 거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그려진 <남순도>는 황실 소장으로 있다가 청말 혼란기에 궁정을 나와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1, 8, 9, 10, 11, 12권의 6권이 전한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에 제3권, 캐나다 앨버타대학 미술관에 제7권이 소장돼있다. 제5권은 행방불명이다. 제6권은 개인이 가지고 있다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2010년 홍콩경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에 프랑스의 보르도 경매에 나와 각각 고가에 팔렸다. 

기메가 소장하고 있는 것은 제2권과 제4권이다. 제2권은 강희제가 자금성을 나와 평원과 제남을 행차하는 장면이다. 제4권은 산동에서 강소성에 이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기메는 근래 들어 이 <남순도>를 일반에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서양 건륭제 남순도(제10권 부분) 견본채색 70.6x966cm 1764-1770 미셀 칼망 기증

그 대신 쉽게 소개하는 그림이 있다. <건륭제 남순도>이다. 건륭제는 강희제의 손자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조부 강희제를 본받으려 애썼다. 재위 60년을 채운 것도 그렇고 6번의 남순을 행한 것도 같다.

그는 자신의 남순에도 궁중화가를 동원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 작업은 민간에 있다가 궁중화가로 발탁된 서양(徐揚 1712-1779무렵)이 지휘했다. 1770년에 완성된 건륭제 남순도는 2 종류로 비단에 그린 정교한 채색본과 종이에 그린 수묵본이 각기 따로 제작됐다.
 
이 가운데 수묵본은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전12권이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반면 비단 채색본은 <강희제 남순도>와 마찬가지로 흩어졌는데 그 중 제10권이 기메에 있다. 간혹 상설 전시되는 것은 이쪽이다. 이는 도자기 컬렉션으로 유명했던 미셀 칼망이 기증했다.


[참고] 1992년 호암미술관에 소개된 강희제 남순도 1권 부분    

베이징에 있는 <강희제 남순도> 중 한 권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힘들지만 과거 서울에 와 전시된 적이 있다. 한국이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던 1992년 8월의 일이다. 당시 서울의 호암 갤러리에서 열린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의 ‘명청회화전’에 <남순도> 중 제1권이 출품됐다. 이는 강희제가 1689년 정월2일 자금성 영정문(永定門)을 떠나 궁을 떠나 지금 베이징 남쪽의 남원(南苑) 행궁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건륭제의 남순도와 관련해서 서양은 1759년 자신의 고향인 소주의 번화한 모습을 그린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를 그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소주에 온 건륭제에 헌상함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궁정화가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길이 12미터가 넘는 이 그림에는 4600여명의 사람과 40개의 다리 그리고 300여척의 크고 작은 배가 그려져 있는데 현재 랴오닝성 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이 그림 역시 2016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전을 통해 서울에 소개되기도 했다.    
 
판화 <평정 준갈이회부 득승도(平定准喝爾回部得勝圖)>는 건륭제가 자신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자랑하는 전승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는 1755년에서 1757까지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에 있던 회교 부족을 평정했다. 판화는 그 전승(戰勝)내용을 16장면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 판화의 밑그림은 낭세녕 외에 왕치성, 애계몽, 안덕 등 당시 건륭 궁전의 서양인 선교사화가들이 그렸다. 그후 이는 프랑스로 보내져 파리공방에서 동판화 200부를 만들었다. 왕복 11년이나 걸린 대사업이었는데 기메 소장본은 당시 파리 공방에서 남긴 것 중 하나로여겨진다. 


[참고] 낭세녕이 밑그림을 그린 <평정준갈이회부득승도> 16번째 그림

건륭제는 자신의 업적을 길이 남기기 위해 파리에서 찍어온 이 동판화를 목판화로 다시 만들어 강남의 4대 개인수장가는 물론이요 주요 사찰 등에도 주어 소장케 했다. 그리고 1789년에는 북경에 간 조선의 사절에게도 한 벌을 하사했다. 이때 수행화원은 이명기(李命基 176-1813이전)였다.

중국에서 받아온 판화는 <평정 준갈이회부 득승도> 외에 조금 뒤에 중국남방의 묘족을 평정한 내용을 판화로 만든 <평정양금천득승도(平定兩今川得勝圖)도 있었다. 이때 전해진 이 판화는 이명기와 가까운 김홍도 역시 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연구자 중에는 김홍도가 구사한 서양화법은 이 판화의 영향일 것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석도 <경정산추경도(敬亭山秋景圖)> 1671년, 지본수묵, 86x41.7cm

기메의 중국서화로 그 외에 문징명, 동기창, 석도, 왕원기와 같은 문인화가, 궁중화가들의 그림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전시장에서 좀처럼 마주치기가 쉽지 않아 서화애호가로서는 기메가 조금 아쉬운 존재이기도 하다.(y) 

[주]
*정은주 <조서시대사행기록화> 역사비평, 2012년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3.23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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