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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장. 기메 미술관 - 예나광장 앞 동양미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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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기메가 수집한 동양미술의 정수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 가장 근사하게 보이는 곳이 트로카데로 광장이다. 샤이요궁의 일부인 이곳에 서면 트로카데로 정원과 센강 건너편의 샹드 마르스 광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샹드 마르스의 초록 잔디밭을 배경으로 에 서있는 에펠탑도 더 없이 멋지게 보인다. 


조지 워싱턴 동상
    

사철 관광객이 붐비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지하철로 불과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 예나 광장이다. 이곳도 파리에 흔한 오거리이다. 그 한 가운데 1900년 미국여성단체가 기증한 조지 워싱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기메 미술관은 이 기마상 오른쪽에 부채꼴로 펼쳐져 있는 건물이다.


예나 광장의 기메 미술관
 

설립자는 에밀 에티엔 기메( Émile Étienne Guimet 1836-1918). 미술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정식명칭은 좀 더 길다.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MNAAG;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Guimet)이다. 이곳은 프랑스를 대표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동양미술관이다.  
 
이곳 컬렉션은 런던 영국박물관, 워싱턴의 프리어 갤러리(근년에 새클러와 합쳐 프리어 새클러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보스톤 미술관, 넬슨앳킨슨 미술관, 스위스의 바우어컬렉션,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그리고 경주 서봉총 발굴을 참관했던 구스타프6세의 중국, 일본미술 컬렉션을 이어받은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등과 나란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런 명예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설립된 곳은 실은 파리가 아니라 리용이다. 리용은 기메의 고향이다. 그의 부친 장 밥티스트 기메(Jean-Baptiste Guimet 1795-1871)는 화학자였다. 파리 폴리테크닉에서 공부한 수재로서 울트라마린 안료의 제조법을 발명해 국가산업장려협회의 대상을 수상했다. 이때 받은 6천 프랑의 상금을 가지고 그는 고향에서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은 그후 여러 번 합병 등을 거쳐 세계적인 알미늄 생산업체인 페시네(Pechiney)이 됐고 다시 2000년대 초에 캐나다 기업 알캉에 인수됐다. 

장 밥티스트 기메의 아내는 루브르에도 그림이 소장돼있는 화가 장-피에르-자비에르 비돌 (Jean-Pierre-Xavier Bidauld 1745-1813)의 딸이다. 에밀은 어려서 이 어머니에게 그림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도자기와 조각도 배웠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부친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부친이 사망한 뒤로는 공장 운영을 떠맡았다. 그의 공장은 발전을 거듭해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는 150여명의 노동자들을 이끌며 1천 톤이 넘는 안료를 생산할 정도로 번창했다.
 
그가 미술관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9살 때이다. 1865년과 66년에 걸쳐 이집트와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특히 카이로에서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te 1821-1881)가 설립한 불라크(Boulaq) 박물관을 견학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근대 이집트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마리에트는 자기 집에 박물관을 만들었다. 규모와는 별개로 이 사설 박물관은 이집트유물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세계 최초의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고대 이집트유물을 보았다.
 
그리고 1876년과 1877년에는 세계일주여행에 나섰다. 당시 파리의 부르주아 사이에는 세계일주 여행이 대유행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이때 그는 프랑스 문부성으로부터 극동의 종교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았다. 이 여행에 화가 펠릭스 레가메(Félix Régamey 1844-1907)와 동행했다.

레가메는 파리의 잡지에 삽화와 일러스트를 기고하는 화가이자 기자였다. 그는 반골 성향이 있었다. 1870년 파리코뮌 때 코뮌을 지지하는 잡지를 발행한 이유로 2년간 런던에서 망명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기메가 그를 만난 것은 바로 런던에서였다. 레가메는 시인 렝보, 베를렌 등과도 가까웠다.

1876년 5월20일. 르아브를 떠난 이들은 미국 필라델피아를 향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한 만국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박람회에는 나중에 일본근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어네스트 페놀로사(Ernest Fenollosa 1853~1908)도 하버드대학 법과를 막 졸업하고 동생과 함께 구경하고 있었다.  


[참고] 필라델피아 만국박람회 일본관

일본은 미국에서 처음 열린 필라델피아 박람회를 전폭적인 정부지원 아래 참가했다. 전국에 수배해서 끌어 모은 출품작 이외에 수십 명의 목수를 보내 거대한 일본식 건축의 전시관을 지었다. 보스톤의 의사로 나중에 일본미술연구자이자 컬렉터가 된 윌리엄 비게로(William Bigelow 1850-1926)는 친구에게 ‘박람회에서 일본관 외에는 볼만 것이 아무 것도 없다’라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이 박람회는 1천만 명 가까운 입장객이 들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 일본과 일본 문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기메와 레가메는 필라델피아에서 일본에 대해 간접체험이라고 할 만한 것을 경험하고 태평양을 건넜다. 요코하마에 상륙한 이들은 두 달 이상 일본에 머물렀다. 도쿄뿐만 아니라 닛코, 교토 등지를 여행했다. 도쿄와 교토에서는 여러 사찰을 방문해 승려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레가메는 가는 곳마다 스케치와 사생을 했다. 그는 파리로 돌아와 이를 바탕으로 상당수의 유화를 제작했다.

기메는 일본에 머물면서 많은 것을 구입했다. 서적과 도자기 그리고 불상들이었다. 불상은 특히 수자가 많았다. 기메 일행은 일본 여행 중에 우키요에 화가 한 사람도 만났다. 요코하마와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던 가와나베 교사이(河鍋曉齋 1831-1889)였다. 가와나베는 광화가(狂畵家)라고 불릴 만큼 거침없는 화풍으로 유명한데 우키요에 판화 외에 귀신 그림, 풍자화 등도 많이 그렸다. 동행한 레가메와는 그림으로 소통하며 서로 초상화를 주고받았다. 교사이가 그려준 그림들은 지금도 기메에 소장돼 있다.
   
이들은 그뒤 중국 광동과 인도를 거쳐 1877년 3월에 귀국했다. 중국에서도 동경, 불상, 서적 등을 수집했다. 그림 중에는 송나라 휘종이 그렸다고 하는 두루마리도 들어있다. 물론 후세의 모작에 불과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기메가 이 여행에서 수집한 물건이 소문이 나면서 1878년 파리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리자 트로카데로 궁에 마련된 특별 전시에 초대됐다. 여기에는 레가메가 유화로 재현한 일본 모습도 전시됐다. 기메와 레가메는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공동으로  『일본 산책(Promenades japonaises)』을 펴냈다.

이 컬렉션을 가지고 1879년 리용에 문을 연 것이 기메 자연사박물관이다.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전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고 파리 이전을 약속받았다. 조건은 리용의 미술관과 똑같은 미술관을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예나 광장의 기메 미술관은 이렇게 탄생해 1889년에 문을 열었다.

리용 시에 있던 원래 건물은 1913년부터 시 자연사박물관으로 쓰였고 이는 2007년 폐관할 때까지 운영됐다. 그리고 2014년부터 여기에 자연사 외에 인류학, 문명사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콩플뤼앙스 박물관(Musée des Confluences)이 들어섰다.


리셉션 데스크 옆에 보이는 조선 문관석

다시 기메로 돌아오면, 현관을 들어서서 바로 관람객을 시선을 끄는 것이 조선시대 문인석 한 쌍이다.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기메의 한국실은 의외에 일찍 설치됐다.


캄보디아 불교조각들

리셉션 카운터를 지나 바로 시작되는 1층의 넓은 홀에는 캄보디아의 거대한 석조 불교조각이 펼쳐져 있다. 2층은 청동기와 당나라 테라코타 인형이 있는 고대 중국실을 비롯해 파키스탄과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인도 미술실이다. 중국, 일본, 한국 미술은 3층이다. 4층은 특별 전을 위한 전시실이 있고 유물로는 도자기만 몇 점 전시돼 있다.


로톤도에 안치된 일본 11세기목조 불상

입구에서 3층까지 이어져 있는 로톤도를 잠시 소개하면 1층은 리셉션 홀이다. 2층은 도서실로 기메가 수집한 장서가 빙 둘러 꽂혀있다. 3층은 원형 전시실이다. 2층의 로톤도홀 한편에는 일본의 대형 목조여래불상 한 구가 안치돼 있다. 이는 기메가 수집한 것이 아니라 1994년 구입한 것이다.


로톤도 3층의 여인 조각기둥 카리아티데스

이런 공간 배치는 기메의 요청에 따라 리용 박물관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신고전주의 양식에 따랐다. 비례와 균형 그리고 직선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로톤도 홀 안쪽의 기둥 가운데 2층 부분은 이오니아식이다. 3층은 고대 그리스의 카리아티데스(karyatides), 즉 여인 조각상으로 기둥을 삼은 것이다.  


2층과 3층의 로톤도와 서가 모습

리용 시절의 로톤도는 그리스로마 미술 전시실로 쓰였다. 옛 사진을 보면 방 한 가운데 그리스 조각이 서있다. 파리로 옮겨와서는 도서실로 바뀌었다. 기메는 미술품뿐만 아니라 서적 수집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그는 평소에 미술관을 ‘철학적 과학 공장’이라고 불렀다. 기메에 수집된 동양 미술과 종교에 관한 책은 10여만 권에 이른다. 여기에는 그의 사후에 이곳의 이사로 초빙된 동양학자 샤반느와 펠리오가 기증한 책도 있다.


펠릭스 레가메가 그린 러시아 승려 아리반 도르지예프 법회 모습
 

생전에 기메는 이곳을 도서실 뿐만 아니라 이벤트 홀로도 활용했다. 문화와 종교 행사를 종종  이곳에서 열었다. 동양 종교에 심취했던 그는 자주 동양의 승려들을 초대했다. 1893년 시카고에서 세계 최초의 종교의회가 열렸을 때 여기에 참가한 일본 승려들이 유럽에 들르자 그들을 초대해 법회를 열기도 했다. 진언종 승려 도기 호류(土宜法龍 1854-1923)가 법회를 여는 모습을 그린 레가네 그림이 전하고 있다. 

또 1898년 여름에도 종교행사가 있었다. 라마교 승려로 제1차 대전 전후로 외교에도 영향력을 발휘한 아그반 도르지예프(Agvan Dorzhiev 1854-1938)를 초청해 법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émenceau 1841-1929)도 있었다. 클레망소 역시 동양미술 컬렉터였다. 1894년 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소장품을 정리해 경매에 내다팔 때 그가 모은 일본 미술공예품 789점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1903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네덜란드 출신의 댄서 젤레 맥레오드(Zelle MacLeod 1876-1917)의 파리 데뷔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기메의 정부가 됐고 이후에도 몇 번이나 이곳 홀에서 춤을 췄다. 마타 하리는 훗날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1898년에 그려진 기메의 초상화

이 로툰도에 기메의 초상화 한 점이 걸려있다. 일본 불상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인데 레가메가 그린 것은 아니다. 당시 젊은 화가 페르디낭 장 뤼기니(Ferdinand Jean Luigini 1870-1943)가 그렸다. 그는 기메와 같은 리용 출신으로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알렉장드르 뤼기니의 아들이다.

로툰도 3층 회랑은 최근 소품 전시에 주로 쓰인다. 하지만 1945년까지 이곳에는 기메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미라가 전시돼 있었다. 이들 미이라는 1945년 프랑스 국립박물관들의 소장품 재배치 계획에 따라 루브르로 전부 이관됐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12.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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