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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 파리지사 슈브뢰즈백작 침실의 일본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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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리관 2층의 공예 전시실에서 루이 14세에서 루이16세까지의 실내장식과 가구를 소개하는 곳에는 대개 중국과 일본 도자기가 장식물로 놓여있다.


생주리 회화실 모습

예를 들면 이 시대를 소개하는 코너의 입구 쪽에 있는 39번 방도 그렇다. 이 방은 통로 역할을 해 그림이 벽화처럼 걸려 있는 정도인제 전시실의 이름은 생주리 회화실이다. 제목 그대로 그림 속에 원숭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장식장 위의 커다란 거울을 사이에 두고 그림 두 점이 걸려 있다. 전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남녀 한 쌍 그리고 거위를 쫓는 광대와 사슴을 잡으려는 사냥개가 그려진 그림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 위쪽에 원숭이가 곡예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참고] 장=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당의 자화상 

사람은 안경을 쓴 자화상으로 유명한 이 시대의 화가 장-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당(Jean-Baptiste Siméon Chardin 1699-1779)이다. 샤르당은 인간처럼 분장한 원숭이가 주인공인 생주리 그림을 여럿 그렸다. 철학자에서 골동상인까지 다양한데 이 방에는 화가로 분(粉)한 원숭이를 그린 <원숭이 화가>가 이젤에 올려져있다.



생주리 회화실에 놓여있는 샤르당의 <원숭이 화가>

삼각모를 쓴 원숭이가 석고상을 앞에 두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그림인데 다른 생주리 그림처럼 어떤 우화를 가리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시대에 유행한 중국취향, 즉 시누와즈리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돼 있다.


이마리산의 오채화훼문 육각화병

생주리 그림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보면 장식장 위의 거울 앞에 동양풍의 도자기 한 쌍이 놓여있다. 이 육각 도자기 화병은 일본제이다. 1710년에서 1720년 사이에 규슈의 이마리에서 만들어 유럽에 수출했다. 화병 각 면에는 꽃을 그려져 있는데 이 꽃들은 그림 속 화병에 꽂혀있는 것처럼 그려졌다. 회화의 화중화(畵中畵) 기법이다. 도자기 문양에 보는 재미를 더한 한층 상품 가치를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생주리 회화실에 있는 샤르당 그림과 이마리 도자기는 유명한 컬렉터인 이삭 드 카몽도가 기증한 것이다. 카몽도는 루브르의 장식미술 파트에도 상당수를 기증했다. 앞서 소개한, 델프트에서 만든 국화문양의 파이앙스도 실은 그의 기증품이다.

옆의 방인 로카이유 방(Salon Rocaille, 42번방)에도 중국 도자기가 있다. 로카이유는 로코로를 가리키는 프랑스어이다. 로코코 양식은 흔히 루이 14,15세의 궁중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알다시피 장식이 많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섬약하고 여성적인 모습을 보여 저절로 궁정 내지는 귀족 취향임을 알 수 있다. 


슈브뢰즈 백작의 침실

화사한 분홍색 벽지로 유명한 55번방은 파리 지사를 지낸 샤를르 루이 알베르 드 뤼인 슈브뢰즈 백작(Charles Louis d'Albert de Luynes, Duke de Chevereuse 1717-1771) 저택의 침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슈브뢰즈 백작의 부모는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의 절친한 상담역이었다. 그는 지사 시절 자신의 집을 대대적으로 개조했는데 그 집이 후손에게 전해지다 1962년 루브르에 기증됐다.


침대를 사이에 놓고 마주보는 양쪽 거울 앞에는 각각 중국과 일본 도자기가 장식돼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슈브뤼즈 백작 집안에 전해져온 것은 아니다. 나중에 다른 경로로 국가 소유가 된 것들이다.


설중상매(雪中賞梅)를 테마로 한 이마리산 가키에몬
 

반대편에 황동장식의 뚜껑 있는 항아리는 이마리산(産) 가키에몬(柿右衛門)이다. 1670년에서 90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이 역시 1770년경에 파리에서 황동장식이 더해졌다. 우산을 쓰고 있는 기모노 차림의 남녀가 매화꽃을 감상하는 내용을 반복해 그린 이 도자기는 예전부터 파리에서 유명했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컬렉터였던 금융업자 폴 랑동 드 보와세(Paul Randon de Boisset 1708-1776)의 구장품이다. 이후 프랑스 1급 귀족가문인 도몽 백작가의 루이 마리-오귀스탱 도몽(Louis Marie-Augustin d'Aumond 1709-1782)의 손에 넘어갔다가 루브르에 들어왔다.    
이 옆방은 바실 드 슈리흐팅(Basile de Schlichting ?-1914) 남작이 소장했던 가구, 장식물들을 소개하는 곳이다. 러시아 출신의 슈리흐팅 남작은 컬렉터로도 유명해 사후의 그의 컬렉션의 상당수를 루브르가 구입했다. 유리장 속에는 강희제 시절의 수입된 송대 가요(哥窯) 모방의 도자기가 있다.


소목장 장 프랑스와 르뢰의 가구가 소개된 51번 방 모습

18세기 프랑스 궁중공예를 소개하는 방 중에는 중국도자기를 모방해 세브르에서 만든 중국풍 도자기도 상당수 있다. 51번방은 당시 활동한 에베니스트 장 프랑스와 르뢰(Jean Francois Leleu 1729-1807)의 가구를 소개하는 전시실이다.

르뢰는 젊은 시절 루이 15세의 궁중 소목장인 장-프랑스와 외벤(Jean-François Oeben 1721-1763)의 공방에서 일을 배웠다. 외벤은 화가 외젠느 들라크로아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다. 그는 이곳에서 수련을 쌓고 35살 때 장인 칭호를 들으며 독립했다.


그는 루이15세 시절의 로코코 양식과는 선을 그은 채 균형과 비례에 중점을 둔 신고전주의시대 양식을 선보여 특히 인기를 끌었다. 특히 코모드 위판을 대리석 대신 세브르에서 만든 자기 판을 쓰기도 했다.


강희제 시대에 수출된 청유종형(琮形)자기  

이 방에 장식으로 쓰인 도자기는 중국산과 프랑스산이 섞여 있다. 우선 보아서 왼쪽이 장식장 위에 흰 석고상과 나란히 있는 것은 청색유약의 도자기는 중국 강희제 시대에 수출된 것이다. 청에서는 중국 고대의 옥기나 청동기를 종종 도자기로 재현했다. 사각 형태는 고대의 옥(玉) 유물인 종(琮)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황동장식은 1770년 경 파리에서 더해졌다. 청유종형 도자기 옆에 놓인 흰 흉상은 세브르에서 만든 루이 15세상이다.  
 


중국 청동기 합에서 힌트를 얻은 세브르 도자기

반대편의 벽 앞에 장식된 통형 도자기에는 뚜껑 부분에 머리를 박박 민 중국인 도사와 같은 인물이 앉아있다. 중국이 장식돼 있지만 이는 세브르에서 만든 것으로 중국고대 청동기 합에서 힌트를 얻은 것을고 보인다. 통 옆부분에 용인지 사자인지 불분명한 동물 문양을 넣은 것은 모방작에 흔히 뒤따르는 실수라고 할 수 있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3.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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