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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루이15세 딸들의 일본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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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의 백과사전파는 살롱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살롱을 거점으로 모이고 흩어지면서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싹틔웠다. 이들 살롱은 대개 귀족 여성들이 주관했다. 궁정이나 아카데미의 답답함이나 엄격함이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토론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런 해석과는 별개로 또 이 시대가 요구한 귀족 여성들의 지적인 교양이 새로운 자극의 하나가 됐다고도 한다.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은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살롱을 연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베르사이유에서 멀지 않은 샤토 드 라 셀(le château de La Celle)에 있던 그녀의 살롱에는 볼테르, 루소, 디드로, 달랑베르 등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백과사전뿐만 아니라 18세기 프랑스미술에 보이는 로코코 양식도 이들 살롱에서 그 대부분의 자양분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의 주변 여성들만 살롱 문화를 개척한 것은 아니었다. 왕가의 여성도 시대의 문화를 적극 후원하고 있었다. 이 무렵에 활약한 대표적인 여성이 루이 15세의 딸들이다.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바리 백작부인 등의 수많은 여인과 사귀었으나 본처인 마리 레슈친스카(Marie Leszczynska 1703-1768) 왕비와도 잘 지냈다.


[참고] 퐁파두르 후작부인 시절의 샤토 드 벨뷔

이 둘 사이에서 12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중에 7, 8, 9번째 딸이 특히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 세 자매는 세브르 남서쪽으로 멀지 않은 구릉지에 세워진 샤토 드 벨뷔(le château de Bellevueu)에 살았다. 이곳에서는 파리시내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루이15세가 퐁파두르 후작부인을 위해 지은 성이었다. 세브르의 자기공방을 적극 후원하던 그녀가 베르사이유가 멀다고 해서 옮긴 곳이다.
 
그녀가 죽은 뒤 세 자매가 이곳의 주인이 됐다. 일곱 번째인 아델라이드(Adélaïde 1732-1800), 여덟 번째 빅토와르(Victoire 1733-1799) 그리고 소피(Sophie 1734-1782)이다. 이들 세 자매는 벨뷔 궁을 살롱처럼 개방하고 많은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이들을 후원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벨뷔궁 역시 폐허로 변했다. 루이 16세의 고모가 되는 이들 세 자매 중 살아남은 아델라이드와 빅토와르는 다른 왕족과 함께 파리 시내 튈르리궁에 연금상태로 지냈다. 성은 그 후 1823년에 거의 파괴됐다. 벨뷔궁에 있던 집기들은 이미 혁명기간 중에 대다수가 민간에 유출돼 흩어졌다.



벨뷔궁 접견실의 장식장과 그리스여신상조각 촛대

62번방은 세 자매가 살았던 시절의 벨뷔 궁의 접견실을 재현한 곳이다. 황동 장식을 단 호화로운 가구들과 장식물이 가득하다. 남녀 두 사람이 그려진 그림 양쪽에 커다란 촛대도 그 중 하나이다. 이는 로코코시대 명성을 날렸던 조각가 장-프랑스와 로르타(Jean-François Lorta 1752-1837)가 그리스 여신상을 조각한 위에 황동 촛대를 얹은 것이다.


프랑스와 로르타 조각상 좌우에 놓인 건륭제시대의 경덕진 도자기 한 쌍
 

이들 사이에 보이는 조각 역시 그의 솜씨이다. 조각 양옆의 도자기 두 점은 중국제이다. 건륭제 시대에 경덕진에서 만든 것이다. 황동 장식은 파리에 와서 1786년에 행해졌다.


마르탕 카르랭의 일본풍 코모도

그리고 이들이 놓인 설합장-보통 코모드(Commode)라고 부른다-에도 동양 취향이 보인다. 이 설합장은 방의 구석에 놓여 있는 세모로 된 사이드 테이블 두 개와 한 세트이다. 이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신으로 파리로 나와 명성을 떨친 소목장 마르탱 카르랭(Martin Carlin 1730경-1785)이 만든 것이다.


우산을 받쳐 든 인물이 보이는 일본제 칠기판을 사용한 사이드 테이블 

그는 장식을 위해 당시 수입된 일본제 칠기판을 사용했다. 여기에 매화를 감상하는 인물과 소나무 아래 정자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 등 동양적 풍경이 그려져 있다. 또 반추상화된 폭포도 있다.

이런 일본 취향은 세 딸만이 그친 것이 아니다.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도 주변 가구장식에 일본풍을 좋아했다. 46번방에는 마리 레슈친스카 방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남편이 베르사이유에서 풍파두르 후작부인 등과 사랑 놀음을 즐기고 있을 때 부르봉 왕가의 거성(居城)인 퐁텐블로성을 지켰다. 이 방에 전시된 것은 퐁텐블로성의 레슈친스카 왕비의 방에 있던 가구들이다. 

레슈친스카 왕비의 취향을 말해주는 것이 일본풍 가구이다. 코모드란 설합 달린 장으로 대개 아래위로 설합이 있다. 문갑처럼 옆으로 문이 달린 것도 있다. 네달란드에서 먼저 시작돼 루이14세 시대인 1700년 무렵부터 프랑스에 유행했다.

레슈친스카 왕비의 코모드를 만든 에베니스트는 니심 드 카몽도가 열렬히 수집했던 베르나르 2세 반 리센 부르그(Bernard Ⅱ Van Riesen Burgh 1700-1760)이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 베르나르 1세의 아들로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왔다.


마리 레슈친스카 왕비가 사용했던 코모도

이 코모드는 상판에 대리석을 얹었고 앞면은 일본 칠기판을 사용했다. 주변에 넝쿨 문양의 황동장식으로 둘러 화려한 취향을 더했다. 칠기판에는 기러기가 날고 있는 물가의 누각 풍경이 새겨져 있다. 소나무 이파리까지 새긴 섬세한 표현이 일본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다. 화창(花窓) 밖의 초화문(草花文) 역시 당시 프랑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이국 문양이다. 베르나르 2세는 이를 1737년에 만들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이와 같은 이국취향은 훗날 유행하는 자포니즘과 무관하다. 일반적인 동양 취향으로서 뭉뚱 그려 시누와즈리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다수의 일본 취향이 들어 있어 최근 중국의 연구자들 사이에는 19세기 후반 들어 자포니즘이 유행하게 된 데에는 이미 이와 같은 일본취향이 담긴 시누와즈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9.09.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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