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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4. 전구 스탠드로 변신한 중국의 수출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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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에 푸른 색 벽지가 발라져 있어 살롱 블루라고 불리는 방이 있다. 이 방은 그의 딸인 베이트리체가 어린 시절 썼던 방이다. 이 딸이 결혼해 독립한 뒤로는 모이스가 자신의 개인 서재로 사용했다.

공원 쪽으로 향해 있어 볕이 잘 드는 이 방은 사방 벽에 18세기의 풍경화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큰 책상이 놓여있다. 이 책상은 루이16세 시대를 대표하는 에베니스트 클로드-샤를르 소니에(Claude-Charles Saunier 1735-1807)가 만든 것으로 전한다.


살롱 블루의 테이블 위 오채도자기 램프

테이블 위에는 모이스의 가족사진과 생전에 그가 사용했던 편지지가 그대로 놓였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중국의 오채 도자기를 손질해 만든 램프이다. 아래에는 황동 받침을 달았다. 위쪽에도 램프를 지탱하는 도금한 청동 지지대가 있다.

문양은 인물을 그린 것으로 정원 한 쪽에 몰려있는 남녀와 어린 아이들이 보여 곽분양축수도(郭汾陽 祝壽圖)를 모티프로 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수출용 중국도자기에는 이처럼 그림으로 자주 그려진 유명 일화나 문학 속의 명장면들이 그려졌다. 당나라 장군으로 장수(長壽)에 다복한 삶을 누린 곽분양 일화도 그렇지만 그 외에 『수호지』 『삼국지』 그리고 『서상기』 등도 소재가 됐다.


오채도자기 장식물

그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서상기(西廂記)』였다. 『서상기』 는 원래 원나라 때 대히트를 친 희곡이다. 내용은 당나라를 무대로 재상의 딸 최앵앵과 과거시험 준비생 장생의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인데 이것이 명대를 거치면서 소설로 각색돼 일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중국의 역사나 문학을 알 수 없는 유럽 사람이라고 해도 이국적 모습의 두 남녀가 서로 마주보면서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는 장면 등은 누구나 저절로 로맨스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인들이 경덕진 등에 남녀 로맨스를 소재로 한 도자기를 주문한 것을 곁눈질하면서 수출용 도자기에 중국의 사랑이야기를 그려 넣은 것이 서상기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로맨틱한 중국도자기에 황동 장식을 더해 장식물로 쓴 것은 18세기 프랑스궁정에서 시작됐다. 이것이 제2제정 시대(1852-1870)로 전해지면서 상층 부르주아 사회에까지 전파됐다.  그리고 백열전구가 발명되면서 도자기는 단순한 거치용 장식품을 넘어 생활용구의 하나로 우아하게 변신했다.

백열전구가 파리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1년 파리산업궁에서 열린 국제전기박람회 때였다. 이때 미국의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등이 출품됐다. 백열전등은 파리에서 큰 화제가 됐는데 당시만 해도 파리의 조명으로 가스등과 석유램프가 대부분이었다. 
 
백열전등이 소개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887년 오페라코미크 극장에서 가스등으로 인한 화재가 일어났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시청, 극장, 역, 거리와 같은 공공시설의 조명이 모두 백열전등으로 바뀌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민간에 화려한 황동 장식의 중국도자기 램프스탠드가 부르주아 가정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중국도자기 전기스탠드가 얼마나 유행했는지 요즘도 파리 벼룩시장을 가보면 발에 차일 정도로 이런 도자기스탠드를 볼 수 있다.  

도자기라면 깨진 사금파리 하나라도 문화재라면서 덮어놓고 벌벌 떠는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처럼 도자기를 재가공해 쓰는 일은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됐다. 터키 이스탄불의 토피카프 궁전박물관은 중국도자기의 보고로 유명하다. 원나라 때부터 중동에 전해진 도자기가 터키 왕가에 전해지며 이곳에 남게 됐다. 그 수는 무려 1만 점이 넘는다.

그중 백미는 중국에서도 사례가 많지 않은 원나라 청화백자이다. 토프카프 궁의 원대 청화백자 병 중에는 금속제 뚜껑이 달려 있는 것이 여럿 있다. 심지어 옆구리에 구멍을 내고 금속제 주둥이를 꽂아 쓴 것도 있다.

살롱 블루의 모이스 책상 위에 있는 오채도자기 스탠드도 뿌리를 추적해보면 멀리 중동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니심 드 카몽도 미술관에 소개돼 잇는 도자기의 상당수는 이처럼 중국의 수출용 도자기이다.


뷔퐁도자기로 채워진 도자기 방

그런데 이들 사이에 세브르 도자기만으로 꾸며진 방이 있다. 중국인을 소재로 한 오뷔송 타피스트리가 걸려 있는 맞은 편 방이다. 이 방은 삼면의 벽을 모두 도자기로 채우고 있어 가히 도자기 방이라 부를 만하다. 접시, 잔, 컵, 볼 등 무려 350점에 이르며 하나 같이 178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의 18세기하면 절대 왕권이 떠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백과사전파의 시대기도 했다. 이 시대를 살았던 뷔퐁 백작, 조르주-루이 르클레르(Georges-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도 백과사전파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연에 있는 삼라만상을 과학적으로 기록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이런 꿈이 결실을 맺은 것이 大저작 『박물지』이다.

36권으로 된 『박물지』에는 새에 관한 자료만을 모아 엮은 『조류 자연사』 9권도 들어있다. 이 『조류자연사』는 수백 종류의 새를 각각 설명하면서 정교한 삽화를 곁들였다. 이 삽화는 백과사전적 지식에 선호한 독자들의 시선도 끌었지만 한편으로 화가들은 물론 세브르 도공에게도 소중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

1784년 암스텔담의 상인 르 페브르(Le Fevre 미상)는 세브르 공방에 이 책에 나오는 삽화를 문양으로 그려 넣은 식기 세트를 주문했다. 초록 바탕에 금박 점을 찍은 기하학 문양 사이에 각양 각색의 새가 정교하게 그려진 것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르 페브르 부인도 별도의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 식기 세트는 그후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가구수집가로 유명한 레오폴드 두블 남작(Baron Léopold Double 1812-1881)의 손에 들어갔다. 두블 남작의 사후에 열린 경매에서 화상 셀리그만이 이를 몽땅 구입해 모이스에 넘겨주었다. 


르클레르의 『조류자연사』 도안이 그려진 설탕 단지

모이스 컬렉션에는 르 페브르 부부컬렉션 이외의 것도 포함돼 있다. 프랑스혁명 이전에 주불대사로 파리에 와 있다가 이 세트의 일부를 선물 받았던 윌리엄 이든(William Eden 1745-1814)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그는 이렇게 모은 뷔퐁 도자기를 위해 르네 세르장에게 도자기 방(le cabinet de porcelaines)을 따로 만들어줄 것을 말했다.

모이스는 만년에 손님이 없는 날이면 이 방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고 한다. 방에는 지금도 작은 테이블이 있고 창문을 통해서는 몽쏘 공원이 내다보인다. 그가 만년을 홀로 보낸 것은 자신에 앞서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그외의 뷔퐁 도자기

앞서 소개한  것처럼 부인과는 일찍 헤어졌다. 그리고 딸을 시집보냈고 그 뒤 아들과 함께 살았다. 아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했으나 1917년 9월 항공정찰을 나갔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이 아들의 이름이 니심 드 카몽도였다. 아들을 잃은 그는 더욱 비사교적이 됐고 1924년에 죽은 뒤에 모든 것을 파리 장식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니심이란 이름은 부친과 먼저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붙인 것이었다.

그는 1935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집안의 비극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를 점령한 나치가 유대인인 그의 딸 가족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것이다. 1942년 모이스의 마지막 남은 가족인 베이트리체는 남편 레옹 레나흐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난 두 아이와 함께 모두 나치에 체포됐다. 그리고 1943년 남편과 두 아이들이, 1944년에 베아트리체가 각각 아유슈비츠로 보내졌다. 모이스 집안은 그것으로 막을 내렸고 미술관만 남겨지게 됐다.

이는 별개지만 이 미술관 지하에는 생전의 모이스 가족이 유태식으로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꾸몄던 주방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8.10.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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