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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황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경관도 볼거리 - 이데미츠(出光)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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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유명 건축가가 실력을 발휘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당연히 세계적 유명 미술관은 건축가와 짝이 돼 기억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루브르의 I.M.페이, 빌바오의 프랭크 게리 등등.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미술관은 그 자체가 볼거리고 랜드마크입니다. 이렇게 유명 건축가를 고집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믿음도 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내용 중시파도 많습니다. 미술관 건물 따위에는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건물이야 어떻든 관람객이 손쉽게 찾아올 수 있는 시내 교통 좋은 곳이 '좋은' 미술관이라는 발상입니다. 


센가이 <○△□> 에도 지본수묵 28.4x48.1cm

다분히 실용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이런 생각에 기초한 미술관들은 대개 시내 요지의 빌딩 한두 개 층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1966년에 개관한 이데미츠 미술관도 그렇습니다. 같은 해에 재건축된 도쿄 마루노우치 데이코쿠 극장(帝國劇場) 빌딩 9층에 있습니다. 데이코쿠 극장은 일본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연극 전용극장입니다. 1911년에 지어졌으나 관동 대지진때 불탔습니다. 재건된 뒤 한 동안 영화 개봉관으로도 쓰였으나 재건축되면서 다시 연극전용관이 됐습니다. 그 한 층에 이데미츠가 들어간 것입니다.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이 빌딩은 건축으로는 별로 내세울 게 없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없는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9층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입니다. 극장은 도쿄 황궁의 해자(垓字)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따라서 미술관 9층 로비의 유리창 너머로는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황거(皇居)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실용적 위치를 생각해낸 사람은 일본 석유산업계의 거물 이데미츠 사조(出光佐三 1885-1981)입니다. 모든 컬렉터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개성이 강했습니다. 물건을 모은다는 것은 주관이 분명치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개의 컬렉터들이 자기주장이 강한 개성파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달 수 있습니다.

그는 사업에서도 개성적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탱커를 발주해 이목을 끌었는가 하면 한때 전쟁 상대였던 구소련의 원유를 일본에서 가장 먼저 수입하기도 했습니다. 또 근래까지 회사의 상장을 거부했습니다. 남의 돈 빌려다 장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업 운영도 그랬습니다. 한때 국내 기업 중에도 가족주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곳이 있었습니다. 이 '가족주의'는 그가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듯이 기업도 기업에서 일하는 종업원, 직원을 가족처럼 아끼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세운 회사(이데미츠 상회에서 1940년 이데미츠 흥산(興産)으로 바뀌었습니다)에는 없는 게 많습니다. 우선 출근부가 없습니다. 정년도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도 없으며 종업원 잔업수당도 없습니다.

대신 결혼하면 그날부터 월급이 60% 인상됩니다. 또 사원은 함부로 자르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남아와 만주 일대에 나가있던 사원들이 귀국하게 됐습니다. 이들 1200여 명에 대해 그는 ‘월급을 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한 사람도 자르지 않겠다’면서 이들을 모두 거둬들였습니다.

평소에 그는 ‘사람이 자본’ 이라고 말했습니다. 직원에 대해서도 ‘사원은 부려먹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가족주의를 고베고등상업학교(현 고베대학) 시절 배웠다고 했습니다. 당시 교장은 학생을 자식처럼 아꼈는데 그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는 그가 젊어서 접한 미술품에서도 영향을 받은 점도 있습니다.
 

그는 후쿠오카 출신입니다. 집안은 염색물감 도매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고베고등상업학교(현 고베대학)을 나왔습니다. 이곳을 졸업한 뒤 밀가루, 기름 따위를 파는 사카이(酒井) 상회에 사환으로 들어갔습니다. 사환은 견습으로 사원보다 한 칸 아래입니다. 그래서 고상 출신자들은 학교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흉을 봤지만 배우려면 아래서부터 철저히 배워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곳은 2년만 다니고 말았습니다. 홀로 장사를 하던 모친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25살에 기계유를 다루는이데미츠 상회를 차렸습니다. 어려움도 겪었으나 상회는 10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술품은 독립 직후부터 관심을 가졌습니다.


센가이 <참아내는 버드나무> 에도 지본수묵 47.0x59.7cm

처음 접한 것이 센가이 기본(仙涯義梵 1750-1837)의 선화(禪畵)였습니다. 그는 에도 후기의 선승화가입니다. 고향 가까운 후쿠오카의 세후쿠지(聖福寺) 주지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센가이 그림은 형식이나 화법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심오한 선의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 당시부터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도 여기에 매료됐습니다. 

그림 수집에만 빠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센가이의 어록을 사업에 직접 활용했습니다. 사원 훈시에 곧잘 선가이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업 철학화했습니다. 사례가 있습니다. 한때 산하의 전국주유소에서 사장의 얼굴사진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센가이의 <참아내는 버드나무(堪仁柳)> 그림을 잔뜩 복제해 나눠주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바람도 있나니, 버드나무여’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청자시모가무병(靑磁下蕪甁), 남송 관요 높이  23.1cm 중요문화재

센가이 그림은 결국 1천여 점 이상 모았습니다. 그리고 둑이 터진 듯 중국 도자기와 청동기, 한국 도자기, 일본의 남화, 우키요에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도자기 수집은 20후반 만주 진출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대련에 지점을 낸 뒤 서너 달에 한번 씩 출장을 갔습니다.

이때 시간 보낼 요량으로 대련 시내의 일본인 골동상에 드나들면서 중국도자기와 접하게 됐습니다. 가모 호가이켄(加茂方外軒)의 주인은 젊은 이데미츠에 이상하게 호의를 보였습니다. 자신이 구입한 가격에 1할을 더한 값으로 물건을 대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매번 새로운 물건 20-30점씩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중국도자기 컬렉션의 기초가 형성됐습니다.


이데미츠 중국도자 컬렉션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원나라 때 청화백자입니다. 중국 도자의 역사는 오래지만 원나라 청화백자가 연구자에게 알려진 것은 20세기 들어서 입니다. 그 이전까지 정복왕조 원은 도자기의 암흑시대로 불리며 도외시됐습니다. 그러다 영국의 퍼시벌 데이비드(1892-1964) 경이 수집한 청화백자에 ‘지정10년(1351)’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는 바람에 비로소 원나라 때 청화백자가 존재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유리홍파초문 주전자, 원 높이 33.8cm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원나라에서 청화백자가 출현하기에 앞서 유리홍(釉裏紅) 자기가 먼저 구워졌습니다. 유리홍이란 초벌 백자 위에 동(銅) 계통의 안료로 그림을 그린 것을 말합니다. 골동 상인들은 흔히 진사(辰砂)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 위에 최초로 붓으로 문양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도자사로서는 의미가 엄청나게 큽니다.

이데미츠 유리홍(釉裏紅)파초문 주전자는 이를 대표하는 도자기입니다.이는 전후 일본경제 부흥기에 일본에서 수집한 것입니다. 이때 석유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사업이 크게 확장됐습니다. 아울러 컬렉션도 질적, 양적으로 확충됐습니다. 청화 기마인물문 항아리 역시 이 무렵 수집한 원대 청화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청화백자 기마인물문 항아리, 원 높이 28.4cm 

이 항아리에는 원나라 때 인기 높았던 원곡(元曲)의 한 장면을 그려져 있습니다. 한나라 때 흉노로 시집가게 된 왕소군 일화를 다룬 「한궁추(漢宮秋)」입니다. 항아리에는 매를 들고 말을 탄 흉노의 무장들이 정교한 필치로 그려져 있습니다. 뒷면에는 불안한 모습의 왕소군과 시녀들이 말의 탄 모습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원나라 청화자기는 수출용 자기로 유명합니다. 이란 북부의 알데빌 영묘(靈廟)나 터키의 토프카프 궁전에 있는 수십 점의 원나라 청화는 이들이 당시 이슬람세계용의 무역도자기였던 사실을 말해줍니다. 석유 사업인 만큼 이데미츠는 중동과 관계가 깊었습니다.

특히 이란과 관계가 돈독했습니다. 이데미츠가 영국에 대항하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은 영국에서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석유는 여전히 영국이 독점했습니다. 그래서 이란은 석유 국유화를 선언했고 영국은 군함을 보내 석유를 실러온 배를 격침시키겠다고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데미츠 사장은 이런 영국의 처사를 부당하게 여겼습니다. 패전국의 동병상린인 때문인지 비밀리에 탱커를 이란에 보냈습니다. 당시 연합군사령부도 속인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매스컴이 이데미츠와 이란 편을 들면서 이데미츠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측의 큰 신뢰를 얻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70년대 일어났던 석유파동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이데미츠는 일본도자학계의 중동지역 연구뿐만 아니라 중근동 학회도 후원했습니다. 세계 무역도자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카미 쓰기오(三上次男 1907-1987) 교수의 서아시아와 중근동 일대의 발굴 조사를 수십 년에 걸쳐 지원했습니다.

미술관에는 고야마 후지오(小山富士夫)가 각국의 도자파편 자료를 정리해 도편 자료실이 로비 한쪽에 마련돼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도요지에서 채집한 자료들이 유형, 지역별로 분류 소개돼 있습니다. 또한 1979년에 미사카노 미야(三笠宮, 다이쇼천왕의 4남)의 발안으로 시작된 중근동문화센터의 설립도 지원했습니다.


청자음각연당초문 주전자 및 승반, 고려 24.0cm

한국 도자기 컬렉션은 전쟁이후에 본격적으로 수집했습니다. 특히 청자 음각연당초문 주전자와 승반 그리고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사이호는 대표급 유물입니다. 고려 때 주전자는 승반을 갖춰 제작됐습니다. 그러나 세트로 전하는 것은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이 주전자와 승반은 거의 하자가 없는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사이호, 조선 높이 32.7cm

분청사기 항아리는 몸통에 모란 문양이 크게 백상감된 보기 드문 걸작입니다. 이 면상감 기법도 수준급이지만 듬직한 크기에 뚜껑까지 갖춘 완벽한 형태라는 점에서 15세기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힙니다.

일본도자기는 고향인 규슈가 원산인 가라츠(唐津)도자기를 주로 모았습니다. 그 외에는 노노무라 인세이(野野村仁淸)의 걸작이지만 기구한 운명을 걸은 도자기가 있습니다. 이는 저화도에서 구운 도기(陶器)의 일종이지만 금, 은에 붉은 안료를 써서 화려하게 겨자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이로에 개자문(芥子文)차항아리, 에도 전기 높이 43.4cm 중요문화재

이 항아리는 에도시대부터 인세이 작품 중에서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관동대지진때 소장가 집의 벽난로 위에서 떨어지며 5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전쟁 이후 이는 수리를 거쳐 원형이 복원되었고 이데미츠가 입수한 것입니다.

서화는 센가이 이후에 남화를 집중적으로 수집했습니다. 여기서도 고향 편역이 작용해 오늘날 오이타현 다케다시(大分県竹田市) 출신의 남화가 노노무라 지쿠덴(田能村竹田 1777-1835)의 그림을 모았습니다.


다노무라 지쿠덴 <매화서옥도> 1832년 지본담채 173.6x63.8cm 중요문화재

특히 지쿠덴 그림은 1925년 무렵 규슈 일대에서 수집 붐이 불었습니다. 이때 오사카 출신으로 규수에 와서 철도사업을 하려던 사업가 한 사람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열의가 지나친 나머지 어음을 남발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습니다.그가 모은 지쿠덴과 주변 남화가의 그림이 대거 경매로 처분됐는데 이때 주요작을 손을 넣었습니다. 앞서 나라 네라쿠 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인 지쿠덴의 <역복일락첩(亦復一樂帖)> 역시 이때 매물로 나와 11만엔에 팔렸습니다.

이데미츠의 문인화 가운데는 지쿠덴보다 조금 앞선 우라카미 교쿠도(浦上玉堂 1745-1820)의 그림도 상당수 있습니다. 대표작은 <쌍봉삽운도(雙峰揷雲圖)>입니다. 그는 오카야마번의 무사였으나 탈번계를 내고 화가의 길을 걸은 사무라이 출신의 문인화가라 할 수 있습니다.

갈필로 그린 그의 산수화는 스산한 느낌의 깊이 있는 풍정을 담고 있어 일본 문인화가 도달한 한 정점이라고도 불립니다. 노벨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가 그의 그림에 깊이 매료된 일로도 유명합니다. 


우라카미 교쿠도 <쌍봉삽운도> 지본담채 174.5x90.5cm 중요문화재

<쌍봉삽운도>는 그 당시 조선도 그랬듯이 중국을 동경한 마음이 투영돼 있습니다. 쌍봉은 중국 강남의 문향인 서호 주변에 있는 산입니다. 이 산에 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을 갈피의 섬세한 필치로 그린 것입니다.

그 외 일본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반다이나곤 에마키(伴大納言繪卷)>입니다. 에마키는 이야기가 담긴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을 말합니다. 이는 일본 중세에 그려진 4대 에마키(繪卷) 중 하나입니다.



<반다이나곤 에마키> 3권(부분) 헤이안 지본채색 31.5x839.5~931.7cm 국보

내용은 헤이안 시대에 일어났던 궁궐문 방화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3권에 그린 대작입니다. 이데미츠는 이를 1983년 고하마(小浜)번주의 후손 집안에서 32억 엔을 주고 사 당시 미술시장에 큰 화제가 됐습니다. 3권 전부가 공개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금년 봄에 개관 5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을 통해 3달에 걸쳐 한 권씩 일반에 공개됐습니다.


목계 <평사낙안도> 남송 지본수묵 33.0x109..5cm 중요문화재

중국회화를 대표하는 것은 목계의 <평사낙안도(平沙落雁圖)>입니다. 목계는 남송말 원초에  활동한 선승 화가로 번지기(渲染) 기법의 수묵화로 유명합니다. 이는 그가 그린 ‘소상팔경도’ 중 한 폭입니다. 8폭 가운데 현재 4폭에 남은 가운데 하나입니다. 4폭은 모두 국보로서 네즈(根津)미술관, 고토(五島)미술관, 하타케야마(畠山)미술관에 각각 소장돼 있습니다.


청동도철문가(斝), 상 높이 각 45.7cm 45.8cm 중요문화재

이데미츠의 중국미술품 중에는 다수의 청동기도 있습니다. 일본 내 중국청동기 컬렉션은 센오쿠학코칸(泉屋博古館)이나 네즈(根津) 모두 전전(戰前)에 수집해 이룬 것들입니다. 그에 비하면 후발주자입니다. 대표적 유물로 은허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술잔 가(斝)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종류의 술잔으로는 최대급 크기이며 둥근 눈과 큰 뿔의 괴수 도철(饕餮)이 손잡이로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외 이데미츠에는 소량의 서양화도 있습니다. 특히 미술관 로비에는 프랑스의 조루즈 루오(1871-1958)의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이 걸려 있습니다. 이 연작 64점은 한꺼번에 매물로 나와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그는 루오 그림의 터치에서 센가이의 선을 느낄 수 있다며 즉 구매 의사가 향 타진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루오의 터치에서 센가이의 선을 느낄 수 있다며 일본화나 마찬가지라고 구입을 결정했습니다. 이 구매 이후 루오 가족은 판화 42점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루오작품은 판화를 포함해 400여점에 이릅니다. 그 외에 센가이의 미국전시 때 알게된 샘 프랜시스의 추상화도 소장돼 있습니다.

이데미츠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상장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다 2003년에 상장을 하며 자산을 압축할 필요가 있다고 해 해외미술품을 대거 처분했습니다. 세잔 작품이 이 해 뉴욕경매에서 20억 엔에 판매 되는 등 145억엔 어치의 소장품을 처분했습니다.


<오백나한 원상주존자> 고려 1235-6년 비단담채 59.0x41.3cm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고려 때 그려진 오백나한도의 한 폭입니다. 고려의 어느 시기에 그려진 오백나한도는 그 형식으로 보아 현재 동일한 화가가 그린 것이 14점 정도 확인됩니다. 이데미츠 구장품은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의 제379 원상주존자(圓上周尊者)를 그린 것입니다. 그려진 연대는 1235년이나 36년으로 추정됩니다.  

이데미츠 미술관은 창업주 고향인 모지(門司)의 항구지역에 있는 창고를 리뉴얼해 2000년 오픈한 이데미츠미술관 모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 로비에 샘프랜시스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참고>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3−1−1 帝劇ビル
http://www.idemitsu.co.jp/museum/honkan/index.html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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