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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한일 미술계의 좌장 시미즈 도운(淸水東雲)과 해강 김규진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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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기나긴 36년이란 치욕의 역사를 보내야 했던 지식인들은 해방을 맞이하며 다시 한 번 치욕스런 참회의 순간을 가져야 했다. 해방 후 정치적으로 일본 정부에 앞장을 섰던 지식인들은 반민특위에 회부되었고, 각 분야의 지도적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친일 혐의에 몸을 사려야만 했다. 물론 빼앗긴 조국에서 점령국의 주구 노릇을 하며 동포를 힘들게 한 이들이야 누린 만큼 역사의 멍에를 져야만 한다. 하지만 능력이 출중하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일본과 교류하며 생활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역사에 서술해야 할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일이다.

특히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강직한 지사들에 비해 감성적이며 창조적인 성향이 강한 예술가들은 삶의 형태가 같을 수는 없었다. 어느 시대나 예술가들은 정치의 주도 세력이 바뀌면 권력 유지의 선전 부대로 제일 먼저 차출되곤 했다. 일제강점기에도 상황은 비슷하여 예술가들은 일본인들의 비호가 없이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이런 이들을 지사들과 같은 기준에서 역사적 과오를 평가한다는 것은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미술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며 당시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 등에서 큰 상을 받으며 활약했다는 것만을 들어 친일 인사로 모는 것은 당시 사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지나친 평가로 생각한다.

2.
문제는 점령국인 일본이 미술계를 장악하고 활동에 제약을 주었을 때, 한국의 미술계 인사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매천 황현과 같은 지사처럼 목숨을 끊으며 지식인으로서 살기 어려운 현실을 슬퍼해야 하는가? 아니면 붓을 꺾고 초야에 묻혀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인 미술가들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나타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러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훗날 다가올 조국의 광복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창조적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을 정치체계의 구성원인 관료들이나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지사적 인물들과 같은 기준에서 평가하긴 어렵다. 또한 사회의 모범적 구성원인 일반 백성들과도 같을 수 없다. 그들을 예술가로서의 신분 특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삶의 외적 형태보다는 작품 속에 드러난 사상과 감성으로 그들의 행동을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당시 한국인 화가들과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화가들은 어떤 관계를 유지하였을까? 그들이 지배국의 대표와 식민지 나라의 대표로서 서로 경쟁하며 반목하고 살았을까? 한국과 일본의 미술을 미술계의 중심에 세우기 위해 마치 독립 운동을 하듯 투쟁하며 지냈을까? 이러한 관계는 미시적인 측면과 거시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이들은 거시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미술 행정에 참여할 때에는 미술계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였다. 이미 일본인 중심인 미술계였지만 한국인 미술가 또한 자신들의 미술계 지분과 역사적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반대로 미시적인 개인 생활 속에서는 서로 교류하며 동료로서 우정을 다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적성 국가의 일원들이지만 예술이라는 매개로 서로 존중하며 그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3.
우연히 그림 한 점을 보았다. 한 군소 경매회사의 온라인 행사에 내 눈을 자극하는 그림 한 점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안면이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오래 전에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그때에는 별가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관심 분야가 달라지며 안목이 달라졌는지 오히려 매우 의미 있는 신선한 작품으로 보였다. 그림은 '동운(東雲)'이라는 이가 그리고, 화제를 해강 김규진이 썼다. 전에는 그림도 삼류화가의 솜씨처럼 촌스럽고, 작가도 누군지 모르는 것이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김규진과 시미즈 도운의 합작도 <귀어도>

그런데 한 동안 새로운 미술 분야 공부를 하고, 다시 보니 한국미술사에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작품이었다. 이제 작가도 누구인지 알 것 같고, 그림도 왜 촌스럽게 보였는지 알 것 같다. 몇 년 사이에 특정한 분야에 새로운 눈이 생기며 평가의 눈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동안 누군지 몰랐던 이 작품 속의 호 '동운(東雲)'은 바로 일제강점기에 정동에 살며 일본인 화가들의 좌장 역할을 했던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이었다. 그의 그림에 영친왕의 사부인 한국인 해강 김규진이 화제를 쓴 것이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일본인 화가들의 좌장인 시미즈 도운이 산수 풍경을 그리고, 한국미술계 좌장 중의 한 명인 김규진이 화제를 쓴 특별한 합작도였던 것이다. 더욱이 두 사람은 한 살 차이의 친구 같은 관계였으니, 그들의 국적을 떠난 우정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점령하자 많은 일본인 민간인들이 들어왔다. 이때 일본인 화가들도 함께 들어온다. 이미 들어와 있는 화가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중등학교 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작품 활동보다는 주로 학교 교육에 주력하는 인물들이었다. 식민지가 고착화되자 많은 화가들이 한국으로 밀려들어 온다. 공적인 임무로 온 이도 있고, 개인전을 하기 위해서, 친지 방문을 위해서, 식민지 스케치 여행을 하려 오기도 했다. 어떤 이는 금강산이 좋아서 오기도 하고 평양이 좋아 기생과 정분이 나기도 하는 등 한국 방문의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한국에 애정을 가진 어떤 화가들은 한국에 정착하여 개인 화숙을 열어 한국인에게 미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많은 일본인 미술인들이 들어오고 문화정책이 시작되자 조선총독부는 조선미술전람회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화가들도 조직을 만들어 세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연계를 해야 하니 한국에 있는 일본인 화가의 구심점이 필요하였다. 이 역할을 한 이가 교토에서 온 시미즈 도운이었다. 또한 조선미술전람회의 성격을 일본 문부성전람회와 같은 방식으로 정착시키려 하니 많은 일본인 화가들의 도움이 필요하여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그들을 주로 영접하고 함께 일을 한 사람 또한 시미즈 도운이었다.

4.

합작도 <귀어도>는 그림 그리는 용도로 쓰는 고운 노방 천에 수묵담채로 그린 산수화이다. 일본인 화가 시미즈 도운이 수묵을 주로 사용하여 산수를 그리고, 담채로 채색을 살짝 곁들였다. 작품 좌측 위쪽에 김규진이 작품의 내용에 맞추어 화제를 썼다. 화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 내린 연못에 푸르름이 점점 더하고,
   어깨에 나무통을 메고 고기 잡아 돌아오네.

   중재 대아에게, 해강 제하다.

   過雨池塘綠漸肥 半肩잠(竹+令)箸釣魚歸
   中齋大雅 法正 海岡 題

화제를 보면 이 작품은 '중재(中齋)'라는 이에게 주기 위하여 두 사람이 합작하여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주로 몰골법과 먹의 번짐을 이용하여 사물을 묘사하였다. 특히 나무와 바위의 묘사에서 당시 일본 내에서 유행하던 신남화에서 많이 사용하던 몽롱체 기법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기교가 매우 뛰어나나 초가집을 그린 것이 마치 일본의 초옥과 비슷해 보이고, 인물 묘사도 조선시대 회화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라 이국적인 모습이 보인다. 훗날 전후 한국의 미술 시장에서 많이 팔렸던 상업용 그림의 필치와도 유사한 느낌이 든다. 상업적인 그림의 연원이 일본화에서 나온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귀어도>는 동양 회화의 소재 가운데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인 '은일(隱逸)'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동양의 지식인들은 세상에 나가면 사대부로 살고, 물러서면 초야에 묻혀 은일지사로 살기를 꿈꾸었다. 이러한 의식은 모두 중국의 유명한 고사에서 시작되었다. 도연명, 소동파, 강태공, 임포 등 많은 인물들의 삶은 후대 지식인들의 삶의 기준이 되었으며, 이러한 의식은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문인화의 근간이 되는 남종화에서 주요한 소재로 다루어지며 오랜 기간 중심 소재로 자리잡았다. 이 작품도 대표적인 은일지사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그린 이나 작품을 받는 사람 모두 한가로이 자연을 벗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한편으론 그림 가운데 흐르는 강물의 다리 위에 서있는 인물은 마치 그림을 그린 작가 자신이 투영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대 각 나라의 대표적인 예술가 두 사람이 만나 작품 하자니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생각하며 작품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본래 문인화 합작이란 것이 서로의 감정을 담는 것이 작품의 시작이니, 이 작품 속에도 두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을 것이다. 우측 아래 그림을 그린 시미즈 도운의 서명이 있고, 좌측 위에 김규진의 이름이 있으니, 혹시 다리 위의 인물은 김규진을 찾아가는 시미즈 도운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흐뭇한 생각을 해본다. 조국을 빼앗기고 빼앗은 식민지 안에서의 삶이지만, 국적을 넘은 예술가들의 우정을 느끼게 하는 정겨운 작품이다.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11.19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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