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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마모토 바이카이(山本梅涯) <조선 사찰 풍경>의 서글픈 운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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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마모토 바이카이(山本梅涯)의 <조선 사찰 풍경>

이상의 자료를 통해 이 작품이 야마모토 바이카이의 것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야마모토 바이카이는 서양화 강습소를 설립하기는 하였지만 본래 일본에서 동양화로 그림을 시작하여 동양화에도 능했다. 그는 경성에서 지내면서 서양화를 가르쳤지만 평상시에는 동양화도 자주 그렸다. 조선미술전람회에도 서양화부와 동양화부에 모두 출품하여 수상할 정도였다. 그가 동양화를 자주 그린 것은 당시 한국 화단이 동양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서양화만 그려서는 생활이 되지 않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야먀모토 바이카이 <눈 내린 풍경>


지금까지 전하는 야마모토 바이카이의 작품은 2년 전 필자에 의해 발굴된 <눈 내린 풍경>이라는 제목의 산수화 한 점뿐이었다. 이 작품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야먀모토 바이카이의 이름만 전해올 뿐 전하는 작품이 없었다. 이 작품은 오세창 선생 구장품으로 1923년 야마모토 바이카이가 직접 오세창 선생에게 직접 그려준 작품이다. 동양화의  모습이지만 눈 내린 후의 호숫가 풍경을 서양화법에 기초하여 그린 이색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국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에 발견된 작품은 교토에서 미술 공부를 한 이력답게 교토화파의 남종문인화 정신과 역사화의 전통이 잘 나타나 있다. 고운 노방 천에 수묵 담채를 사용하여 산 중의 절 풍경을 담담한 필체로 그렸다. 그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도 금강산을 그린 것으로 한국의 실경을 그린 것이었다. 이 작품도 한국의 어느 절을 그린 것으로 보아 한국의 풍경을 매우 좋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인 화가들 중에는 일본 제국주의와 일본 미술문화를 한국에 이식하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과 교류하는 것을 즐겼던 친한파 인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5. 조석진 작품으로 변조된 이유

그러면 이 그림에는 왜 조석진과 관련된 화제가 새로이 추가된 것일까? 여기에는 한국 미술 문화의 추한 그늘이 숨겨져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제 강점 36년간 수많은 일본인 화가들이 한국에 와서 거주하기도 하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한국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주로 금강산 등 절경이나 풍속  등을 그렸다. 한국은 방문했던 이들은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한국에 거주하는 이들은 해방이 되자 겨우 몸만 도망가고 그림은 두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그림들은 박물관에 소장된 것을 제외하고는 불태워지는 등 대부분 폐기처분 되었다.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조차 관리가 안 되어 없어진 것들도 많았다. 다행히 한국인들에게 팔리거나 선물로 주어 소장된 것은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해방이 되고 경제 개발이 이루어지자 미술 시장이 활성화되게 되자 예전부터 내려오던 작품들이 고가에 팔리는 세상이 되었다. 화랑도 생기고 서화 골동품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많이 생기자 세대교체가 되며 오래된 집에서 좋은 그림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화제의 변조 과정


이때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의 그림들이 한국의 근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나오게 되었다. 이들의 그림은 한국 풍경을 그린 것이 많았는데, 주로 금강산이나 풍경을 그린 것들이었다. 이러한 그림은 상당히 수준이 높아 많은 이들의 관심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그렸다는 것 때문에 팔리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사는 이도 없었고 파는 이도 값을 쳐 받을 수 없었다. 어떤 것은 없애버리기도 하고, 어떤 것은 수결과 인장을 없애버리고 민화 형식으로 팔고, 어떤 나쁜 이들은 한국의 유명한 화가의 것으로 변조하여 팔았다. 금강산 그림은 주로 김규진의 것으로 둔갑하였고, 인물화는 주로 김은호의 작품으로 변조되어 팔렸다. 이 작품은 조석진의 것으로 변조된 경우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화가들이 한국의 풍경이나 풍속을 그린 작품의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미술사를 통째로 반 이상을 잃어버린 셈이다. 어떻게 복원해야 할 것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6. 미술사의 재정립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한국 미술계의 상층부에는 일본인 미술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어울리다 돌아간 것이 아니고 한국인들을 가르치고,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미술 활동을 하다 돌아갔다. 서구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당연히 한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시 일본인 미술가들의 활동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이러한 사실은 친일의 문제가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 미술 역사 공부에 대한 방임이라는 관점에 해당하는 것이다. 꼭 억지로라도 몰라야만 하는 수치스런 역사는 없다. 한일 관계라는 정치적 굴레로 우리나라 근대는 한 세대 이상의 미술사가 절름발이 상태이다. 더 많은 자료가 사라지기 전에 일제강점 36년의 미술사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12.13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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