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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에 대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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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관계자로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한 가지이다. 조선시대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의 당시 한국 미술계의 실제 모습을 가능한 데까지 재구성하는 것으로, 특히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 내에서 활동한 화가들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여 기록하는 일이다. 한국인 화가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화가들의 활동과 교류를 파악하여 서로 간의 영향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당시 식민지 상황의 한국미술계는 한국인 보다는 일본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 휘하에 사는 한국 미술가는 알게 모르게 일본인 미술가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36년 이상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수도 없이 많은 일본 미술인들이 한국을 다녀가고 활동을 하였는데도 이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당시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화가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물론 이들과 한국인 미술인들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 

이런 연구는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서 확연히 뒤떨어진 상황이다. 일제강점기의 한국 화가들과 일본인 미술인들과의 관계를 연구하다 보면 미술계 인사들의 반응이 매우 독특함을 느끼게 된다. 보통 조국의 상실과 광복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역사가들의 경우, 한국의 저명한 인사가 일본인의 영향이나 일본에 부역한 것을 밝히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애국과 친일을 구분한다는 의미에서도 매우 권장할 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이광수가 어떻게 공부를 했고, 일본에 어찌 부역을 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또한 일제에 충성한 경찰은 어떤 과정을 거쳐 친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중요한 역사 공부이다. 

그런데 미술사 분야에서는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 물론 고고학 같은 경우는 일제 침략의 첨병 역할을 당당하였다는 측면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성과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미술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나 공예가들에 대해서는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못하다. 어찌 보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미술가들이 어떻게 한국에 와서 자리잡고, 한국인들에게 어떤 일을 하였는지를 알아야 미술 분야에서는 어떻게 한국이 일본화되었는지를 알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36년간 얼마나 많은 일본 미술인들이 한국에 왔을까? 또 그들은 어떤 활동을 했을까? 그들의 정책과 교육에 한국인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이상 등등을 알려면 당시 한국에 거주하였거나 미술활동을 한 적이 있는 미술인들에 대한 파악을 하고, 그들의 작품 활동이 어떠하였고, 실제 그들의 작품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미술사학자들 중 대부분 연구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연구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어떤 이는 일부 화가들의 친일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도 한국에 권력을 행사한 일본 미술인들의 작품에 대해 논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피해를 알려면 가해자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일본인 미술가들은 몇 명이나 와 있었을까? 또 그들은 무슨 작품을 하였을까? 학교 선생으로 왔던 미술인들은 무슨 활동을 하였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공예품을 만들었을까? 또 경성이나 부산 등에서 화실을 열었던 전문화가들의 활동은 어땠을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운영이나 심사에 참여했던 일본인 미술가들의 활동은 어땠을까? 이들은 일본인끼리만 어울리고 한국인들과는 따로 놀았을까? 한국인 미술가들은 한국인끼리만 어울리고 일본인 미술인들은 배척하였을까? 당시 한국 최고 수준의 작가들은 대부분 독학으로 공부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른 역사 분야와 달리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에서 일본인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화숙을 연 일본인 미술가, 미술 단체를 조직한 일본인 미술가 등 이름만 존재할 뿐 그들의 실제 미술 활동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그들이 어떠한 그림을 그렸으며, 한국인들과는 어떤 영향 관계에 있었는지 그들 수준은 어땠는지 연구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는 반토막 미술사이다. 당시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서 출세하고자 했던 대분분의 한국 미술가들은 전람회를 기획한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고, 그들에게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당연히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에는 일본 미술인들의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당시 일본인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에 비해서 수준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 근대미술의 최고봉인 고희동, 허백련, 이상범, 김은호 등등 대부분의 화가들은 다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들이 영향을 받은 일본인 작가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그러니 한국 화가들의 작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는 데에 한계가 있다. 김은호의 작품이 왜색이 강하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이 없다. 대부분 솔거처럼 천부적으로 타고 나서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이중섭이나 이인성을 연구하는데 그들 선생의 작품과 연계해서 연구하는 작업도 거의 없다.

언젠가 이런 부조리한 연구에 이의를 제기하자 어느 미술사학자가 "왜, 굳이 일본인 작가들을 끌어내어 한국 미술 선구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일본인 미술인이 한국 미술인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느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다른 분야의 일제강점기 연구에서는 친일활동이나 친일적 요소를 찾아내는게 매우 중요한 일인데, 미술에서만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참 이상한 일이다. 근대미술이라는 것이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이니 당연히 일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당연히 그들의 수준이 높았을 것은 당연한데, 그렇기 때문에 굳이 밝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은 무슨 학자적 태도인지 모를 일이다.

일제강점기 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행해야 될 몇 가지 일차 연구가 있다.

  1. 일제강점기에 활동했었던 일본인 미술가 파악
  2. 일본인 미술인들의 공적, 사적 활동 
  3.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한 일본인들의 활동
  4. 일본 미술인들과 한국 미술인들의 교류
  5. 한국미술인들에 대한 일본 미술인의 영향

이런 과정에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편치 않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이 드러난다. 하나는 한국 미술인이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인 화가들의 실력이 한국인 미술인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결과이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미술마저 그들에 비해 뒤떨어졌다니...답답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당시 상황조차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 흉한 직무유기이다. 누가 어떻게 노력했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어떻게 극복하여 훌륭한 작가가 되었는지 설명이 되지 않으면 옳은 연구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들과의 관계는 연구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반쪽 연구밖에 될 수 없다. 이는 현대미술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제라도 일제강점기 일본인 미술가들에 대한 연구가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한국에서 활동했던 일본 미술인들의 규모와 활동에 대해 기본적인 자료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조선미술전람회, 조선남화회 등 여러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미술인들의 명단과 그들의 작품이나 자료 등을 수집하여야 한다. 많은 자료가 망실되어 사라졌지만 이제라도 열의를 가지고 수집한다면 많은 성과를 보일 수 있다. 


얼마 전 친구가 연구에 필요할 것이라며, 자료 한 장을 선물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 10주년 기념 '재선작가일람표(在鮮作家一覽表)'였다. 뛸듯이 반가운 자료이면서도 한 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 운영의 일환이라고 하나 일본인들이 만든 자료임에도 한국인 미술가와 일본인 미술가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당시 미술계의 현황을 잘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자료는 일본인들은 전부 빠져 있으니 전모를 전혀 볼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이런 자료를 만들려 했는데, 그 모델을 본 것 같아 반갑다. 한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누가 먼저 해 놓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아쉬울 것은 없다. 나는 단순한 명단 자료인 여기에 내용을 추가하여 보다 진척된 자료를 만들면 된다. 이미 정리된 자료 한 점을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의욕이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다.







글/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12.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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