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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와마타 코호(川俣公邦)의 <수원아루(水原雅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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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정수

카와마타 코호(川俣公邦, 1890-?)의 작품 <수원아루(水原雅樓)>는 수원 화성(華城)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을 그린 것이다. 화성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1794년 뒤주 속에서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풍수지리학상 명당인 화산(華山)으로 이전하고 그 부근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平山城)의 형태로 시설의 기능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이다.
 
방화수류정은 수원 화성의 네 개 각루(角樓) 중 동북 각루이다. 누각의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인 정명도(程明道)의 시 중 ‘운담풍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다고 한다. 화성의 동북쪽에 군사지휘소부로 만들었던 누각으로,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의 동쪽 구릉 정상 즉 용연(龍淵) 남측에 불쑥 솟은 바위 언덕인 용두(龍頭) 위에 있다.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은 원래 군사 시설로 만들었으나 성곽 아래에 있는 용연 등 경관이 좋은 위치에 자리하였기 때문에 단순히 군사시설로만 활용하지 않고 경치를 조망하는 정자의 역할도 겸하였다. 이 건물은 형태가 불규칙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주변 경관과 어울림이 뛰어난 건물이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2월 14일에 화홍문을 경유하여 방화수류정을 찾은 기록이 있고, 1797년(정조 21) 1월 29에 이곳에서 임금과 신하가 활쏘기를 하고 화성을 건축한 노역의 노고를 치하한 기록도 남아 있다. 

건물은 2층 구조이며 불규칙한 지형과 바위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ㄱ자형으로 지었다. 상층은 사방이 트인 누각으로 동서 세 칸 중 가운데에 온돌방을 두고 북쪽에 한 칸, 남쪽에 반 칸의 마루를 물리었다. 또 서쪽의 한 칸은 길게 2칸으로 늘렸다. 특히 용연 방향으로는 작은 쪽마루 툇간을 달아내어 평난간을 둘렀다. 하층 벽체는 아래에 돌을 쌓고 그 위는 전돌로 쌓았으며, 성 바깥쪽으로 총안을 뚫었다. 

이 건물은 평면의 형태가 복잡한 만큼 지붕도 단순하지 않다. 팔작지붕을 ㄱ자로 꺾어서 짜고 다시 툇칸이 생기는 부분마다 작은 지붕을 덧붙여 놓아서 용두 위에 우뚝 솟은 건물의 모습은 동서남북 위치에 따라 각기 달리 보인다. 지붕의 한복판 위에는 절병통을 세웠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에는 용두를 설치하였다.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히 사용한 2층 누각 형태의 이 건물은 다른 정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정자의 기능을 고려하여 축조되어 주변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카와마타 코호 <수원아루> 


<수원아루>를 그린 카와마타 코호는 교토 출신의 일본화 화가로, 야마모토 슌코(山元春挙, 1872-1933)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여러 화목을 모두 잘하였으나, 특히 산수화와 화조화에 능하였다. 일본미술전람회(日本美術展覽會)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제국미술전람회(帝國美術展覽會)에서도 여러 차례 입상하였다. 그의 스승 야마모토 슌코는 교토 마루야마 시조파(円山四條派)의 중심 화가로 다케우치 세이호(竹内栖鳳, 1864-1942)와 함께 근대 교토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는 교토회화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제국미술원 회원과 제실기예원에 위촉되었다. 야마모토 슌코는 조묘회(早苗会)라는 이름의 화숙을 주재하였다. 카와마타 코호는 조묘회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었다.


<수원아루> 부분도


방화수류정이 우리나라의 성루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만큼, 이를 그린 <수원아루> 또한 실물 못지않게 섬세한 필치와 정교한 채색으로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다. 크기는 세로 70cm이며, 가로는 43cm이다. 오른쪽 아래에 ‘수원아루(水原雅樓)’라 명제를 적었고, 이름자인 ‘슈호’의 한자인 ‘공방(公邦)’이라 수결하였고, ‘공방(公邦)’이라는 주문방인을 찍었다. 

고운 비단에 진채(眞彩)를 사용하여 그렸다. 색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하여 정확하면서도 자연스럽다. 근경에는 누각 앞으로 흐르는 물을 그리고 누각으로 오르는 물가에 커다란 소나무 다섯 그루를 그렸다. 소나무의 갈색 줄기와 초록 빛 잎의 묘사가 실제 나무를 보는 듯하다. 소나무 뒤로 작품의 중심 소재인 방화수류정을 그렸는데, 돌을 쌓은 후에 특이한 구조로 세운 건물의 모습이 아름답고, 누각의 기둥과 지붕의 조화로운 채색이 자극적이다.  

사물들의 묘사가 치밀한 것에서 섬세한 작가의 솜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각 사물들의 자연스러운 배치와 복잡한 건물의 구조적인 모습을 조직적으로 묘사한 것에서 작가가 서양화법을 능숙하게 발휘할 만큼 깊이 수련한 화가임을 알 수 있다. 돌을 쌓아 이룬 아름다운 성곽의 자리 잡은 모습이 실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물가의 굴곡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나 근경의 소나무에 비해 뒤에 배치된 누각을 상대적으로 작게 그린 비율은 원근법의 표현이 성공적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여름날 햇빛을 머금은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는데, 그 위로 쓸쓸히 새 때가 하늘을 날아 화면 밖으로 쓸쓸히 사라지고 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면이지만 회색빛 하늘 아래로 사라져가는 새 때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며 작품에 작가의 회색 색조의 영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는 극단적 색채감을 느끼게 하는 화려한 풍경이지만 화면 속에 사람 한 명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의 시상마저 느끼게 한다.   

한편 <수원아루>는 채색을 많이 사용한 작품이지만 내용 면에서 작가인 카와마타 코호가 남종화적 경향이 강한 교토 출신의 화가임을 느끼게 하는 요소들이 드러나 있다. 교토화파들은 전통적인 남화의 정신을 중시하고, 소재적인 측면에서 역사적인 유적이나 사실을 작품의 주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수원아루> 또한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이라는 역사적 유적을 소재로 하고 있고, 작품 속에 시적 서정을 담고자 하는 경향은 모두 교토화파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카와마타 코호가 그린 <수원아루>는 교토 출신의 일본인 화가가 한국의 명소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인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을 그린 것이다. 비록 일본인 화가가 그린 일본화풍의 채색 작품이지만 화면 속에는 일본적인 정서와 함께 한국적 시적 정서도 함께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화수류정이 정조와 관련된 많은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는 누각임을 보여주듯, <수원아루>의 화려한 채색과 시적 정서는 아름답지만 외롭게 서있는 방화수류정의 모습에서 화려했지만 외로웠던 정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잘 짜인 원근법적인 구도와 완결된 솜씨를 보여주는 채색은 화가 카와마타 코호의 작가적 역량을 보여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결국 <수원아루>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화가들이 역사적인 유적을 소재로 그린 작품 중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10.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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