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일본미술관 with 한국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하시모토 간세츠(橋本關雪)의 <머리카락(髮)>
  • 619      
하시모토 간세츠(橋本關雪, 1883-1945)는 화가인 하시모토 가이칸(橋本海関, 1852-1935)의 아들로 고베(神戸)에서 태어났다. 하시모토 가이칸은 한문에 능한 유학자로 교육자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시화에 뛰어난 문인이며, 많은 서화를 남긴 화가이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역사 연구에 주력하여 많은 저작을 남겼다.
하시모토 간세츠(1883-1945)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다. 그는 1903년 다케우치 세이호(竹内栖鳳, 1864-1942)의 화숙인 죽장회(竹杖会)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그의 스승 다케우치 세이호는 교토 출신의 화가로 14세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17세에 고노 바이레이(幸野楳嶺)의 제자가 되었다. 1889년에 교토시립미술공예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1900년 유럽을 여행하며 미술 공부를 하는데, 이 때 인상파의 영향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이후 자연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화와 서양화의 기법도 자유롭게 활용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도쿄화단과 쌍벽을 이루는 교토화단의 맹주 중 한 명이었으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끼친 대화가였다. 


하시모토 간세츠


하시모토 간세츠는 1908년 제2회 문전에서 처음으로 입선한다. 1913년과 1914년의 문전(文展)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으며, 1916년과 1917년에는 문전에서 특선을 하였다. 제국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을 맡아 1934년에는 황실기예원(帝室技芸員)으로 선발되었다. 1935년에는 제국미술원(帝国美術院), 1937년에 제국예술원(帝国芸術院) 회원이 된다. 1940년에는 건인사(建仁寺) 맹장(襖絵)의 그림을 제작하였다. 중국 고전 문학이나 풍물을 테마로 한 작품을 그렸는데, 그는 역사화라는 시조파(四条派)의 전통에 새롭게 맛을 더해 ‘신남화(新南画)’라는 작풍을 확립하고 치밀한 선묘과 담묵(淡墨)에 의한 동물 그림을 완성하였다. 건축과 조경에도 조예가 깊고, 다이쇼 시대에는 아카시 후타미(明石の二見)에 별장 "蟹紅鱸白荘"을 세웠다. 1945년에 죽었으며, 시가현(滋賀県) 오츠시(大津市) 월심사(月心寺)의 묘지에 영면하였다.


하시모토 간세츠 <금릉회고(金陵懷古)>


하시모토 간세츠는 한국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그는 1910년 한일병탄이 이루어자 3년 후 한국을 방문한다. 그는 경성에서 당시 그림에 재주가 있었던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1857-1927)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의 아들인 이토 히로구니(伊藤博邦, 1870-1931) 등 일본 실세들과 만나 친분을 나누었고, 한국 사람으로는 이완용·박기양·민병석 등도 만나 교류를 한다. 이들은 만나 시·서·화를 나누며 교분을 쌓았는데, 이 때 나누었던 조그만 시화첩이 전한다. 이 첩 속에 하시모토 간세츠는 시 한편을 적은 글씨 한 점을 남겨놓았다. 

1922년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조선미술전람회가 생기자, 2년 후 경성에 거주하던 일본인 남화가 구보타 텐난(久保田天南, 1872-1940경)은 조선남화원을 설립한다. 조선남화원은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1874-1945)이 설립한 일본남화원의 영향을 받아 세운 남화를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조직이 구축되자 일본에서 저면한 화가를 고문으로 위촉하고자 한다. 구보타 텐난은 조선남화원의 고문으로 고무로 스이운 계열의 유명 화가를 위촉하지 않고, 일본 남화의 구파를 대표하는 마쓰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 1876-1963)와 하시모토 간세츠를 위촉한다. 이는 구보타 텐난이 일본 본토에서 정통 남화를 지속하던 구파계 남화의 인맥과 그들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 적합한 인물이 하시모토 간세츠라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하시모토 간세츠는 1938년 17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야자와 겐게츠(矢澤弦月, 1886-1952)와 함께 동양화부 심사위원으로 위촉된다. 그가 한국을 처음 찾은 지 15년 후의 일이었다. 
이상의 기록을 보더라도 하시모토 간세츠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화가인 그는 한국의 인물이나 풍속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적지 않게 남겼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그가 그린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한국을 자주 찾았던 그가 한국 풍속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 생각한 필자는 그의 작품을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을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국화(國畵)」라는 미술잡지를 살펴보다 반가운 도판 하나를 발견하였다. <머리카락(髮)>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작가가 그토록 찾던 하시모토 간세츠였다. 반가운 일이었다. 실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채색 도판이나마 찾을 수 있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었다.   
 


하시모토 간세츠 <머리카락(髮)>


하시모토 간세츠의 <머리카락(髮)>은 ‘만주건국10주년경축기념헌납화’로 그린 작품이다. 이 행사는 일만문화협회(日滿文化協會)와 제국예술원이 주체가 되어 기획된 전람회였다. 이 전시회에는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 1868-1958)과 고무로 스이운 등 15명이 참여하였는데, 모두 당대 일본 최고 수준의 작가들이었다. 모두 15점의 작품이 헌납되었다. 헌납된 작품 중 하시모토 간세츠의 <머리카락>은 15점의 작품 중 유일하게 한국의 풍물을 소재로 그린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한국의 기생이 머리를 다듬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바탕은 종이이며, 크기는 세로 63cm, 가로 93cm의 크기이다. 특별한 처리를 하지 않은 하얀 배경을 뒤로 하고, 두 여인의 모습을 채색을 넣어 그린 인물화이다.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은 하얀 한복을 정갈하게 입고 있는 기생의 모습이며, 뒤에 자리 잡은 여인은 기생을 돕고 있는 하인의 모습이다. 하인은 기생의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하여 주고 있다. 기생은 붉은 색 거울을 들고 정리되는 머리를 보고 있고, 하인은 비녀를 입에 물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정리하고 있다. 

여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선묘가 단호하고 정확한 느낌을 준다. 선의 기운이 엄격하고 절제된 느낌을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여인의 입술과 들고 있는 거울의 색깔이 조화를 이룬다. 기생의 온통 하얀 한복과 하인의 상하의의 빛깔이 자칫 화려하게 속되기 쉬운데 색깔을 잘 조절하여 결을 잃지 않았다.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인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여인의 몸의 동태가 안정감 있고 자연스럽다. 바탕 종이의 하얀색과 호분을 사용한 하얀 한복 빛깔이 같은 듯 다른 변화를 보여주며, 두 사람의 머리와 거울을 잇는 대각의 선이 자칫 단조롭기 쉬운 인물화에 긴장감과 흥미를 함께 준다. 이러한 완벽하게 계획된 듯한 구성은 구상뿐만 아니라 기교가 한 데 어울려 품격 있는 격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교토화파 인물화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작품이지만 특별한 배경 없이 인물만을 배치하였으면서도, 완결감이 느껴지는 구성과 깊이 있는 채색감이 어울려 만들어낸 수준 높은 명작이다.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08.17 10:57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