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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타야마 탄의 <구(丘)>와 김기창의 <엽귀(饁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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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엽귀>와 <구>의 비교

<엽귀>와 <구> 두 작품은 같은 해에 그려지고, 같은 해에 발표되어 각 작가들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들 작품이 동시에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가타야마 탄·김기창 두 사람의 소재 취택과 내용 구성에 있어서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유사한 소재를 그린 공통점도 있지만 구성과 기법이나 작가의 감성에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의 미묘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엽귀>와 <구>


<엽귀>와 <구> 두 작품 사이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작업하는 곳에 새참을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무렵의 장면을 그렸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수수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는 전통적인 한국 농촌 사람들의 모습을 소재로 하여 그리고 있는 점이다. 넷째, 호분이나 석채를 사용하는 등 채색 방식이 일본식 채색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관 <귀어도>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의 주제 의식은 일제강점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미술의 주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가지는 ‘귀소본능’, ‘회귀의식’으로 대변되는 생명체 본연의 본능적인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미술사에서도 ‘귀로(歸路)’라는 주제는 오래전부터 회화의 주요한 주제로 사용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이명욱(李明郁)의 <어초문답도(魚樵問答圖)>에서 시작하여, 조선후기 이재관(李在寬, 1783-1837)의 <귀어도(歸漁圖)>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작가미상 <메추라기와 조> 


둘째 수수밭을 배경으로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수수는 조선시대 회화에서는 소재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사물이다. 수수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해져 오랜 옛날부터 재배되어 왔지만, 한국의 주요한 곡식 중의 하나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재배도 주로 북한 지역에서 이루어졌고, 남쪽에서는 많이 재배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회화에서도 수수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만치 현실 생활과 밀접한 작물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조(粟)’가 조선시대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비유적 표현으로 등장하는 것이지 사실적 묘사를 위해 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회화 속에서 조는 메추리와 함께 등장하여 ‘안화도(安和圖)’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메추리를 나타내는 한자가 편안하다는 뜻의 ‘안(安)’자와 소리가 같다. 또한 조는 벼과 식물로 벼는 한자로 ‘화(禾)’라고 하는데, 이 글자는 화목하다는 뜻의 ‘화(和)’와 소리가 같다. 그러니 ‘안화도’는 ‘편안하고 화목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조지운(趙之耘, 1637-?)이나 최북(崔北)의 <메추리와 조> 등 여러 화가의 작품이 있으며, 작가 미상의 민화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소(畵素) 중의 하나이다. 그림에 수수가 등장하는 것은 일제강점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수는 일본화의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어왔는데, 일제강점 후 일본의 회화 양식이 유입되며 한국에서도 화소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있는 한복을 입은 여인을 그린 것도 이 작품들의 주요한 공통적 소재 중의 하나이다. 머리에 물동이나 광주리를 이고 다니는 여인의 모습은 조선후기 이후 한국 여인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상 중의 하나이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은 일본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러한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의 눈은 점차 한국 농촌 여인의 모습은 물동이를 이거나 광주리를 이고 있는 모습으로 규정화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많이 보급된 풍속엽서에서 가장 많은 도상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도 무수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소재는 조선후기 김홍도(金弘道, 1745-?)와 신윤복(申潤福, 1758-?)에 의해 자주 그려진 소재였고, 이들을 이은 김윤보(金允輔, 1865-1938)와 김준근(金俊根) 등 풍속을 그린 화가들 또한 자주 그린 주요한 소재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풍속 취향은 당시 조선미술전람회가 권장하던 ‘조선 향토색의 구현’이란 모토에 어울리는 범주의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점이기도 하다. 

넷째, 이 두 작품은 채색 방식에서 모두 일본화의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한국에서도 이전에 채색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들 작품의 채색은 한국의 전통적인 채색화와는 작업 방식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화단은 남종화와 북종화라는 대립적인 개념이 있어, 북종화로 대변되는 채색화가 있었지만 민간에서 중심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화려한 채색화가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은 이유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물감의 값이 매우 비싸 이를 사용하기 어려워 채색화가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엽귀>의 의복 채색이나 인물의 피부 채색은 호분을 사용하는 일본화의 진채 기법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또한 누이가 아이를 업으려 허리에 두른 포대기의 색채는 당시 한국의 일상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색감으로 느껴진다. <구>에서 발현된 채색은 일본화가 추구하는 묘사나 채색법의 모범을 보는 듯하다. 커다란 화면을 빈틈없이 정교하게 채색한 것은 마치 장인이 완전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정교한 필선으로 그리고 완결하게 채색한 얼굴의 모습은 한국의 회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특이한 느낌을 준다.  

두 작품은 유사한 소재를 다루고 채색을 사용하는 등 많은 공통점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구도를 잡는 방법이나 채색하는 방법에서는 기질적으로 다른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먼저 두 사생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서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가타야마 탄의 <구>에서는 주인공인 모녀가 배경의 앞으로 클로즈업되어 화면의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더욱이 발의 아래 부분을 잘라 그려 그러한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사진을 찍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에 비해 <엽귀>에서는 인물들이 수수밭 앞의 길에 안정감 있게 딛고 있어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김기창의 <엽귀>는 수수밭을 배경 화면 전체에 배치하고, 그 앞으로 세 사람의 인체가 다 드러나도록 안정감 있게 배치하였다. 소실점을 대각선이 교차하는 한 가운데 둔 지극히 안정적인 구도이다. 안정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에 비해 <구>는 수수를 그리는데 뿌리 부분을 생략하고 윗부분만을 부각하여 앞으로 당겨 한쪽으로 그리고, 나머지 공간의 중간에 인물을 배치하였다. 결과적으로 왼쪽 부분의 공간이 비어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한다. 사물을 배치하는 수준이 고급스럽다. 

또한 <엽귀> 속의 수수밭은 인물의 뒤로 배치하여 파란 하늘빛을 가리고 있는데, <구>는 수수가지들을 인물 앞부분으로 배치하여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의 드넓은 공간을 느끼게 하였다. <구>에서는 수수밭을 배경에 깔지 않고 수수 네 가지만 우측 화면에서 튀어 나오듯 감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포치하였다. 일부를 보여주어 전체를 의미하는 방식이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위태로운 포치 방식이다. 그에 비해 <엽귀>에서는 수수밭을 인물의 뒤 배경으로 안전감 있게 배치하고, 더욱이 인물의 앞으로 길가의 풀까지 묘사하여 인물들의 모습이 전체가 보이도록 포치하였다. 한국인의 관습에서는 인물의 일부가 잘리는 것은 그리 편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채색의 방식에서도 같은 채색화이지만 색감을 이루는 방법에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구>에서의 채색은 원색의 색감이 강하면서도 필선의 예민한 감성을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보는 이에게 극단적으로 자극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수수 잎의 감각적인 묘사, 배경으로 사용된 회색조의 하늘빛의 색감이 대표적이다. 여인과 아이의 얼굴이나 한복의 색감 또한 한국의 일상적인 원색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에 비해 <엽귀>는 호분을 사용하는 등 전면 채색 방식을 취하지만 그리 자극적이지는 않다. 가을 들녘의 황토색과 갈색이 주를 이루고 그 앞에 한복을 입은 한국인의 모습을 그렸다. 김기창의 눈에는 이들의 모습이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의 눈에는 단지 황토 빛 산하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수수밭의 이파리들도 <구>에서처럼 세밀하게 살아있지 않고 가을날에 결실을 이루고 시들어 힘겨워하는 잎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인물의 얼굴 묘사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김기창의 붓은 얼굴 각 부분의 윤곽을 강조하여 그렸으나 윤곽선 보다는 가을 햇볕에 그을린 피부의 묘사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 비해 가타야마 탄은 마치 화장을 한 듯한 하얀 피부에 세필로 얼굴의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렸다. 볕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은 듯한 얼굴과 분바른 듯한 채색 위로 묘사한 눈동자는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실제 현실의 사람이기보다는 어느 일본 연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은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태생적인 차이점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두 사람은 경성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같은 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서 유사한 그림을 그렸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르게 표현되었다. 김기창이 당시의 시대적 조류인 일본화 기법과 향토색을 반영한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태생적인 한국인의 감성은 그의 작품을 일본화로 남겨두지 않았다. 한국인의 감성과 일본화의 기법이 만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일면을 가진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김기창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일본인 선배인 가타야마 탄 등이 형성한 일본화풍의 영향을 받지만 그들의 의식에 매몰된 것만은 아닌 결과를 보여준다. 역시 미술의 창조는 태생과 환경이 한데 어울려야 함을 잘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많은 한국인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가타야마 탄은 일제강점기 한국미술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의미 있는 작가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있는 우리 근대미술사에서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미술 발전을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일본인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한국의 풍속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고, 그의 미술계에서의 활동도 일본의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호흡을 함께 하지 않은 순수한 미술인이었다. 그의 작품 <구>는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며, 당시의 미술 작품의 현황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그동안 그의 작품이 전하지 않아 그의 미술 세계를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이 작품의 발굴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타야마 탄의 <구>는 현재 한국에 전하는 그의 유일한 작품이다. 그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는 다른 작품이 더 발굴되기를 기대해본다. (*)
글/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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