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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와 유영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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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던아트협회와 유영국

1953년의 제3회《신사실파 미술전》을 마지막으로 신사실파의 전람회가 막을 내리자, 유영국과 이규상은 1957년 한묵·황염수·박고석 등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라는 새로운 모임을 결성한다. 모던아트협회의 결성은 유영국과 이규상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모던아트협회는 유영국의 문화학원 선배이며 절친하게 지낸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 1905-1999)의 지대한 영향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유영국은 도쿄에 유학하여 문화학원 1회 졸업생인 무라이 마사나리와 매우 가까이 지낸다. 


문화학원 친구들. 왼쪽 세 번째 유영국, 네 번째 무라이 마사나리


무라이 마사나리는 1925년 문화학원에 입학하여 1928년 졸업한다.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미술공부를 하고 1932년 귀국한다. 그는 1935년에 도쿄 스즈가모리의 아파트 ‘포플러의 집’에 입주하여 지낸다. 그가 온 얼마 후 서양화가로 문화학원에서 가르치던 츠다 세이슈(津田正周, 1907-1952)가 이사해온다. 또한 화가 오노사토 도시노부(小野里利信, 1912-1986)도 자주 놀러왔다고 한다. 그는 1938년부터는 모교인 문화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포플러의 집에는 문화학원 졸업생인 유영국과 김환기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두 사람은 이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며 미술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보면 김병기와 이중섭은 문화학원의 후배이자 제자였으며, 이규상과 문학수 또한 자유미술가협회에 작품을 출품하며 지속적인 관계를 맺은 친밀한 관계였다. 무라이 마사나리는 1937년 자유미술가협회를 창립하였는데, 이곳에서 한국인 젊은 화가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하자 이들과 깊은 친분을 맺게 된다. 이후 1940년에는 경성에서 열린 ‘창작미술가협회 경성전’에 출품하기도 한다.

       
무라이 <천사와 토피아>(1951)      유영국 <산이 있는 그림>(1955)


‘자유미술가협회’는 1937년에 서양화가 하세가와 사부로(長谷川三郎)를 중심으로 무라이 마사나리, 야바시 로쿠로(矢橋六郎, 1905-1988), 쯔다 세이슈(津田正周, 1907-1952), 하마구치 요조(浜口陽三, 1909-2000), 야마구치 카오루(山口薫, 1907-1968), 에이큐(瑛九, 1911-1960) 등이 결성하였다. 서양화부와 조각부·판화부로 이루어졌다. 좌장 격이었던 하세가와 사부로는 도쿄 제국 대학 미술사학과에서 셋슈(雪舟, 1420-1506)를 연구 하였으며, 프랑스에 유학하여 야수파 화가와 추상 회화를 배운 선진적인 화가였다. 그는 귀국하여 근대미술의 이론적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이 모임에는 추상화가와 초현실주의의 경향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에는 ‘자유’라는 명칭이 기피되어, 40년부터 44년까지는 ‘미술창작가협회’로 개칭하였다. 

유영국은 자유미술가협회의 주동 인물인 하세가와 사부로를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중섭이 존경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쯔다 세이슈는 문화학원의 스승이었으며, 무라이 마사나리는 문화학원의 대선배이자 스승이 되는 터이었다. 더욱이 유영국은 자유미술가협회에 1회부터 참여하니 이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영국과 김환기가 귀국하여 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를 조직하는 것도 일본에서 쯔다 세이슈, 무라이 마사나리 등과 함께 자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한 기억을 되살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하였든 자유미술가협회는 일본에 유학한 한국 화가들이 주로 활동하며 견문을 넓힌 단체임에는 분명한 일이다. 

 
일본 모던아트협회전 팜플렛


한국 모던아트협회전 팜플렛


자유미술가협회는 1950년이 되자 창단 때의 회원이었던 무라이 마사나리, 야마구치 카오루, 야바시 로쿠로 등이 탈퇴하고 새로이 재편된다.1) 탈퇴한 무라이 마사나리, 야마구치 카오루, 야하시 로쿠로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46년에 재건된 자유미술가협회에서 탈퇴한 아라이 다츠오(荒井龍男, 1905-1955), 코마츠 요시오(小松義雄, 1904-1999), 나카무라 마코토(中村真), 우에키 시게루(植木茂, 1913-1984), 아사마 세이지로(朝妻治郎, 1915-1980) 등 5인을 규합하여 8명이 ‘모던아트협회(モダンアート協会)’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다. 이들 8명은 모두 추상미술 계열 작가로 1950년 9월에 협회를 창립한다. 다음 해인 1951년 제1차전을 열고, 제2차전부터는 공모제를 채택하여 작품을 출품 받는다. 회화, 조각 외에도 판화, 디자인, 생활 미술, 사진 등의 부문을 두고 매년 봄 도쿄 미술관에서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모던아트협회’는 일본의 추상 미술계의 대표적 단체로 자리 잡는다. 

일본에서 일본 ‘모던아트협회’ 활동이 자리를 잡을 즈음 한국의 유영국은 6.25 전쟁을 겪으며, 당시 화단의 분열과 함께 1953년 3회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신사실파’를 해체하고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는 1957년 한묵·이규상·황염수·박고석 등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라는 새로운 모임을 결성한다. 마치 일본 ‘모던아트협회’가 ‘자유미술가협회’에서 탈퇴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과 같은 유사한 모습이었다.

‘모던아트협회’는 “현 한국 화단의 과제인 현대회화의 문제를 기본 이념으로 삼고 그 운동의 전위체로써 독자적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라는 취지를 표방하며 새로운 미술 운동을 펼치기를 천명한다. 이후 모던아트협회는 모두 6번의 전시회를 연다. 유영국은 1회에서 4회까지 참여하고 5회와 6회는 사정에 의해 불참한다. 네 번의 전람회에 모두 20점을 출품한다.  


제1회 《모던아트협회전》리플렛


제1회 전람회는 1957년 4월 9일부터 15일까지 동화화랑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는 유영국·한묵·이규상·황염수·박고석 등 5인이다. 유영국은 <산맥>·<선과 구름>·<호수>·<가을>·<생선>·<노을>·<새> 등 7점을 출품한다. 이 때 출품한 작품의 특징은 모두 구체적인 자연물의 표상을 의미하는 제목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때 출품하였던 작품과 동일한 제목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한 점도 없어, 당시의 작품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단지 여러 사람의 증언과 동시대의 다른 작품을 참고하여, 자연을 소재로 한 반추상 경향의 작품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제2회 《모던아트협회전》리플렛 


제2회 전람회는 1957년 11월 16일부터 22일까지 화신화랑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는 유영국·한묵·이규상·황염수·박고석 등 1회 참여 작가 5인에 문신과 정점식이 더하여 7인이 되었다. 유영국은 <계곡>·<사람>·<산>·<해변> 등 4점을 출품한다. 1회전에 출품하였던 것과 유사한 계열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때의 작품 중 <사람>이란 제목의 작품이 전한다.


제3회《모던아트전》에서의 유영국(가운데) 



제3회 《모던아트협회전》리플렛


제3회 전람회는 1958년 6월 3일부터 9일까지 화신백화점화랑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는 유영국 ·한묵·이규상·황염수·박고석·문신·정점식 등 2회에 참여한 작가 7인에 정규가 또 참여하여 8인이 되었다. 유영국은 <산맥>·<구름>·<바다에서>·<비>·<나무>·<언덕> 등 6점을 출품한다. 이때의 작품 또한 여전히 구상적 요소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작품 중에서 <바다에서>라는 제목의 작품이 전한다. 


제4회 《모던아트협회전》리플렛


제4회 전람회는 1958년 11월 11일부터 18일까지 동화백화점 5층화랑에서 열렸다. 참여 작가는 유영국·한묵·이규상·황염수·박고석·문신·정점식·정규 등 3회 참여 작가 8인에 김경이 다시 참여하여 9인이 되었다. 유영국은 <계곡>·<노을>·<산, 호수> 등 3점을 출품한다. 이 세 점 모두 전하지 않아 면모를 알 수 없다. 
5·6회에는 무슨 이유인지 유영국은 《모던아트협회전》에 출품하지 않는다. 5회에서는 유영국과 정규가 빠져 7인만이 참여하였고, 6회에서는 유영국과 황염수가 빠지고 임완규와 천경자가 참여하여 9명이 전람회를 꾸렸다. 

모던아트협회는 새로운 미술을 지향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신사실파의 유영국과 이규상이 중심이 되었다는 면에서는 신사실파의 계보를 있는 듯이 보이는 새로운 흐름이었다. 또한  6.25 전쟁 후 현대회화 그룹의 성격을 지닌 단체로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국전의 일방적인 방법론에 상대적인 동인전’을 표방하고 출발하여, 화단에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이식하려는데 기여한 미술사적 의미가 큰 중요한 미술 운동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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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에는 북한 출신의 조양규(曹良奎, 1928-?)가 귀국한다. 1964년에는 많은 회원이 탈퇴하여 주체미술협회(主体美術協会)를 조직하여 나가고, 남은 사람들은 ‘자유미술협회(自由美術協会)’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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