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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와 유영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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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작품 <사람>·<바다에서>를 중심으로
1. 신사실파와 유영국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는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서양화가 한국 화단에 뿌리내리며 현대화되는 과정의 한 중심부에 서 있는 매우 중요한 미술운동이자 미술단체였다. 특히 인상파 미술로 대변되는 아카데믹한 구상미술이 중심이 되던 당시에 야수파·입체주의·구성주의 등을 받아들이며 과감하게 추상화된 회화를 수용하였던 이들의 의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활동이었다. 이들이 공부하였던 일본의 도쿄는 이미 추상 미술이 서구를 통하여 들어와 화단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강압적인 지배를 당하며 수동적으로 문화를 수용하였던 한국은 이러한 세계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추상미술이란 그저 ‘생소하고 이질적이며 낮선 것’일 뿐이었다. 이러한 현실의 터전에서 추상미술을 한다는 것은 ‘대원군의 쇄국’을 뚫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도쿄에 유학을 하며 처음으로 추상미술을 도입한 이가 누군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논란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추상미술은 1923년 화가 주경(朱慶, 1905-1979)의 작품 <파란>이 최초라 알려져 있지만, 이에는 많은 논란이 뒤따라 더욱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 50년대에 함대정(咸大正, 1920-1959)이 입체주의에 입각한 추상미술을 하였으나 활동한 기간도 짧고 미술사에 뚜렷한 성과를 나타냈다고 보기에는 활동력도 모자란 면이 많았다. 적어도 미술사에 실질적인 족적을 남기려면 활동기간도 충분하고, 이론이나 실기의 학습도 높은 수준에 있어야 하고, 그들의 활동이 미술사에 영향을 끼칠 만큼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 한국미술사에서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을 개척한 이가 누구인가를 따져 본다면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미술 수준이 높았던 도쿄에 유학하여 의욕적으로 추상 의식을 습득하였던 김환기(金煥基, 1913-1974)·유영국(劉永國, 1916-2002)·이규상(李揆祥, 1918-1964) 등이 ‘우리나라 추상미술을 개척한 3인’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이들은 도쿄의 일본미술대학이나 문화학원 등에 유학하여 유럽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일본인 스승들의 영향을 받으며 선진 미술이론을 전수받는다. 1930년대 주로 이루어진 이들의 학습의 결실이 한국 화단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가장 괄목한 사건은 ‘신사실파’의 결성이다.   

1947년 어느 날 일본에서 돌아와 ‘조국의 해방’이라는 격동 속에서 갈 길을 모색하던 김환기·유영국·이규상 3인은 서울시 원서동 69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새로운 사실(寫實)을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신사실파(新寫實派)’라는 모임을 만든다. 이 모임은 해방 후 최초로 등장한 추상주의적 성향을 가진 서양화가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모임을 결성한 이듬해인 1948년에 첫 전시회를 연다.  


제1회 《신사실파전》 리플렛


제1회전을 화신백화점에 있는 화신화랑에서 열었는데, 당시로서는 이색적이었던 이 전시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당시의 리플렛을 보면 전람회의 이름을 《신사실파 미술전람회》라 하였다. 원래 12월 1일부터 8일까지 열기로 계획하였는데 사정이 있어 12월 7일부터 14일까지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은 각각 10점씩 모두 30점으로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 때 유영국은 <회화>라는 작품 10점을 출품한다. 신사실파의 첫 전시는 한국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을 전면에 드러낸 최초의 그룹전이라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아쉬운 것은 출품된 작품 대부분이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2회 《신사실파 미술전》리플렛


제2회 전시회는 1949년 11월 28일부터 12월 3일 사이에 동화백화점에 있는 동화화랑에서 《신사실파 미술전》이란 이름으로 열린다. 원서동에 있던 사무실이 성북동 31-2로 바뀐 것으로 보아 김환기의 집으로 사무실을 옮긴 듯하다. 세 사람의 창립 회원 외에 장욱진이 새로 참가하여 회원이 4명이 된다. 
주로 구상적인 작품을 하였던 장욱진이 새로운 회원이 된 것으로 보아 ‘신사실’이라는 기치가 ‘추상의식’과 대응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있어 ‘신사실’이란 추상적인 요소보다는 단지 ‘새로운’이라는데 더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상미술도 당시 한국 미술사에서 새로운 형식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양식’의 ‘신사실’이었던 것이다. 2회전에 출품된 작품 중에서 장욱진의 <독>이 현전한다. 
2회  전시회에 유영국은 <직선 있는 구도>라는 제목으로 A·B·C·D 네 점, <회화>라는 제목 A·B·C·D·E·F 6점 등 모두 10점을 출품한다. 현재 전하는 유영국의 작품 중에서 이 때 출품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한 점 전한다. 1949년에 제작된 것으로, 그동안 특정한 제목이 붙어 있지 않았던 작품이다. 달빛 아래 여러 자연물들을 추상화한 작품인데, 내용상 2회전의 <직선이 있는 구도> 연작 중의 한 점으로 추정하여 후대에 임의로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2회전의 작품인지는 명확한 것은 아니다. 


제3회《신사실파 미술전》리플렛


제3회 전시회는 2회전이 열린 후 4년이 지난 1953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 사이에 부산 광복동 국립박물관 부산임시사무소 화랑에서 《신사실파 미술전》이란 이름으로 열린다. 재2회 전시회 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다음 해에 3회전을 치루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갈 무렵 피난지인 부산에서 3회전이 열린 것이다. 제3회전에서는 이규상이 빠지고 이중섭과 백영수가 참가하여 5인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구성하였다. 온전히 추상을 구사하였던 이규상이 빠지고, 구상성이 강한 백영수가 새로운 회원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아 더욱 구상성이 강한 모임으로 변모된 듯하다. 

혹시 이규상이 빠진 것이 이러한 성향과 자신이 추구하던 미술세계와의 괴리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의문시 된다. 당시 이규상은 신사실파에서 추상미술의 당위성에 대해 역설하곤 하였는데, 신사실파는 반대로 구상성이 강한 작가들이 추가되는 것에 대해 이규상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번 전시에 유영국은 <산맥>·<나무>·<해변에서(A)>·<해변에서(B)> 등 4 점을 출품한다. 이들 작품 모두 현재 전하지 않는다. 
유영국은 3회에 걸쳐 24점의 적지 않은 작품을 출품한다. 그러나 이때의 전시 리플렛에는 사진 도판이 실려 있지 않다. 더구나 당시에 확실하게 확인된 출품작도 전하지 않아 신사실파 활동 시절의 유영국 작품의 실상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단지 출품작으로 증명된 작품은 아니지만 유족에게 전하는 1949년에 제작된 작품이 있어 그 시절의 작품 경향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직선이 있는 구도> 1949


이 작품은 크고 작은 다양한 색 면을 이용하여 구상적 형태와 추상적 형태를 자유롭게 구성하고 있다. 직선과 곡선의 자유로운 배치는 긴장감이나 역동성보다는 오히려 정겨운 서정을 느끼게 한다. 이지적이었던 유영국의 사고에서는 잘 나오기 어려운 구성이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러시아 미래주의나 구성주의 또는 입체주의 양식을 본받은 요소도 보인다. 이러한 면은 같은 시기에 도쿄에 유하하고 있던 김환기에게서도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 시기는 독자적 양식을 수립한 시기라기보다는 도쿄 유학시절에 받은 영향을 다양하게 구사해본 모색의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계속)

황정수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30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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