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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사랑한 화가, 가토 쇼린(加藤松林)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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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제국주의는 타국을 침략,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화를 이용한다.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다른 나라나 민족을 정벌하여 식민지로 삼은 뒤에 식민지의 문물을 강제 약탈해 박물관을 짓고 이를 전시하여 ‘약소국 지배’의 위용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일본 제국주의 또한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한 이후 점진적인 문화침략을 강화했다. 3.1 운동으로 조선에 민족주의 정신이 되살아나며 독립에의 의지가 극도로 치솟자, 당황한 일본은 문화 통치의 방법으로 민심을 유화하려고 했다. 이러한 문화 통치는 얼핏 보면 조선의 문화ㆍ관습 존중 등 조선 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여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한국어 신문이 발간되고, 미술계에서는 조선미술전람회가 창설돼 문화의 부흥이 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통치는 조선인을 회유하는 정책일 뿐 조선 예술의 우수함을 보호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조선을 지배하려는 수단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달리 개인적인 심미적 취향으로 조선을 사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조선의 풍속과 자연, 조선인들이 만들어낸 예술을 사랑했다. 조선민족미술관 설립을 계획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고도 불렸던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 1884-1964), 조선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하며 조선의 공예를 사랑하여 연구한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1891-1931) 등이 그들이다. 특히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어를 사용하고, 조선 옷을 입고, 조선집에 살며 조선인과 어울려 살았다. 조선의 흙이 되고 싶었던 그는 결국 죽어 이 땅에 묻혔다.

이들은 조선의 도자기와 민예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연구를 시작해 조선의 그 누구도 따르기 힘든 업적을 이루었다. 이들과 다름없이 조선에 들어와 조선의 풍광에 심취하여 조선을 사랑한 이가 또 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 등이 조선의 예술품을 모으고 연구한 것과 달리 조선의 풍광과 정서를 그림으로 그린 일본인이다. 삼천만이 가슴을 치며 통한에 빠져 있을 때, 조선에 들어와 조선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평생 조선의 마음을 그린 화가이다. 우리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억해야 함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름은 가토 쇼린(加藤松林, 1898~1983)1이다. 그는 어떤 조선 사람보다도 조선의 산야, 풍속을 사랑하여 조선의 마음을 예술로 승화시키는데 한평생을 보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이방에서 온 조선인이다.



2. 가토 쇼린의 생애

가토 쇼린(加藤松林)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일본인 화가 중에서 조선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 중의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도 조국 일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경계인’이다. 
그는 1898년 9월16일 도쿠시마(德島)의  나카군 구와노초(那賀郡 桑野町, 지금의 아난(阿南)시)에서 가토 야스조(加藤安三)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부강중학(富岡中学)을 거쳐 와세다 대학(早稲田大学) 문학부에 입학하였다. 1918년 20세 때 부친의 사업 관계로 경성으로 이주해 경성부 광희정(京城府 光熙町)에 살았다.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하여 미술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경성에 이주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평생 화가의 삶을 살게 된다. 경성에 와서 가토 쇼린은 그림에 뜻을 두고 배우고자 하였으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 그때 마침 경성에는 시미즈 도운(清水東雲)이라는 사람이 사진강습소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미즈 도운은 1908년경에 서울에 들어와 이미 청소년들에게 회화와 사진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다.

“일인 청수동운은 화가로 저명한 사람인데 해외 미술을 전파할 계획으로 학원생 수십 명을 모집하여 제반 도화 및 사진 미술을 전수하매, 학생이 증가 하였더라.”

가토 쇼린은 시미즈 토운이 경영하는 경성화실의 존재를 듣고 찾아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다. 타고난 재주가 있었던 가토 쇼린은 시미즈 토운에게 동양화의 기본을 배우며 독자적인 자신의 미술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빠른 시간 안에 능력 있는 화가의 반열에 올라선 그는 조선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출품하여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또한 심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당시의 미술계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풍경· 정물 분야에 독자적인 화풍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조선미술전람회는 화가로서 입지를 굳히는 때마침 나타난 출구였다. 제1회부터 마지막 제23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품하여 상을 받고, 출품자로 시작하여 추천작가·심사위원에 이른 유일한 인물이 된다. 그는 착실히 실력을 쌓아 조선 화단의 부동의 지위를 갖추었으며, 조선왕실에서 그림을 강의하는 등 조선 미술계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 조선에서 그림을 배워 조선에서 성공한 화가인 셈이다. 

1938년에 대일본회화강습소에서 출판한 『대일본화가명감(大日本畵家名鑑)』의 기록에 보면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고 하며 산수와 화조에 모두 능하였다고 한다. 주소는 경성부 서사헌정(西四軒町) 193-19로 되어 있다. 서사헌정은 지금의 장충동이니, 가토 쇼린은 처음 경성에 와서 광희동에서 살다 장충동쪽으로 이주했음을 알 수 있다. 1938년 동경에서 발간된 화가 명감에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때 쯤엔 일본 내에서도 화가로서의 경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반도 전국을 여행 다니며 풍경을 그리고, 기행문을 쓰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조선 팔도를 누비며 조선의 산수와 풍속을 화폭에 담아낸 그는 특히 금강산에 매료돼 수차례 산행을 통해 금강산의 사계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남긴 그림들은 어느 쪽으로도 정치색을 띠지 않고 객관적으로 자연과 풍속을 담은 작품들이다. 한국인의 편에 서서 당시 일제 강점기 치하 민중들의 애환을 직접 담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당시 한반도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일제의 식민정치를 찬양하는 작품들도 없다. 

조선미술전람회 마지막까지 출품하며 정력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1945년 일본 패전과 함께 귀국하여 동경에서 생활한다. 그는 일본 중앙화단에서 활동하면서도 한국계 잡지에 집필하거나 조선학회 및 일한친화회 등의 활동에 참가했다. 가토 쇼린은 이후 오사카 인근으로 이주해 살게 되는데 계속하여 재일동포들과 활발히 교류를 했다. 교토(京都) 소재 민족학교인 국제학원에서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화가인 부인 역시 오사카의 민족학교인 금강학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재일사회와의 교류에 일생을 바쳤으며, 1958년에는 조선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화문집 『조선의 아름다움』을 출간하기도 하였다.1 한일 국교회복 이전인 1963년에는 전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정부에 초대를 받아 한국을 방문하였다. 조선 서민들의 일상을 즐겨 그리며, 조선을 각별히 사랑했던 그는 1983년 오츠시(大津市)에서 84세로 타계했다.

유작으로 남아있는 그림들은 모두 300여점으로 부산에서 평양까지 한반도 전역을 돌며 그린 풍경화와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가 대부분이다. 유족들은 이 모두를 아난시(阿南市)에 기증했다. 그는 '남북 조선의 융화에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유지를 남길 만큼 조선을 사랑한 사람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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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평생 다양한 호를 사용하였는데 쇼린(松林)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는 등 주로 조선에서 사용한 호이다. 일본에 돌아가서는 쇼린진(松林人)이란 호 쪽을 더 많이 사용했다. 따라서 근래 한국의 연구에는 쇼린, 일본에서는 쇼린진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서로 『조선의 아름다움』 이외에『조선민요선』,『조선동요선』등이 있다.   

글 황정수(선문대,미술사) 관리자
업데이트 2019.09.2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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