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일본미술관 with 한국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79. 박영철: 연암집, 오세창, 조선고서화전람회
  • 2257      
박영철이 그의 나이 53세 때인 1932년 5월에 17권 6책으로 간행한 '박영철본 『연암집(燕巖集)』'은 국문학․한문학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박영철본은 시문 만이 아니라 『열하일기(熱河日記)』, 『과농소초(課農小抄)』까지 포함된 책으로 박지원의 모든 저작의 실체를 최초로 공간하여 세상에 알렸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정확하다는 평을 듣는다.

"박영철의 한문 실력이 조악한 데다 박영철본이 이본대조를 하지 않아 많은 착오와 탈락이 있다"는 국어학자 홍기문(洪起文)의 엄격한 지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박영철본이 가장 광범히 수집되고 정확히 기사되었다"고 홍기문도 인정할 정도로 박영철본은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근역서휘(槿域書彙)』 전37책(부분). 오세창이 고려 말에서 대한제국까지 걸친 서간류 등의 필적을 모은 첩.
1930년 경에 박영철의 손에 들어갔다가 1940년 경성제국대학교에 기증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박영철의 서화 수집은 당대 최고의 서화가이자 감식안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도움에 의했다. 오세창은 박영철의 집에 출입하며 서화 감정을 해 주었음은 물론 『연암집』 간행 역시 오세창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고 도자 수집가로 유명한 수정(水晶) 박병래(朴秉來: 1903-1974)는 증언하였다. 박영철이 돌아간 후 경성제국개학에 기증한 『근역서휘(槿域書彙)』 37책과 『근역화휘(槿域畵彙)』 3책 역시 오세창이 편집했다는 사실 역시 알려진 사실이다. 오세창이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 서화계에서는 물론 수장가들의 수장에도 깊이 간여하였다. 일제시기 당시 우리의 미술품을 지키고자 노력한 간송 전형필에 도움을 준 것은 물론 대수장가 박영철, 박창훈, 박병래 등의 수장에도 오세창은 조언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 사고(社告), 『동아일보』, 1930.10.08


박영철은 1930년 10월 동아일보사에서 개최한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와 1932년 10월 역시 동아일보사에서 개최한 같은 제목의 전람회에 수장품을 출품하였다.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 에 출품된 박영철 출품 내역, 『동아일보』, 1930.10.18



 구분

1930 

 1932

 

 柳成龍

 行書

 丁若鏞

 細楷

 金正喜

 隸書屛(8)

 金正喜

 艾虎

 金玉均

 行書

 

 

 

 姜希顔 49

 古畵五十人百納屛(12)

 秦再奚

 山水

 柳德章

 蘭竹

 卞相璧

 

 沈師正

 龍虎圖 

 金弘道

 四民圖(4)

 金弘道

 神仙圖

 李寅文

 水墨山水

 金正喜

 蘭蕙

 

 

 

 

 

 

 大院君

 

 

 

 張承業

 人物魚蟹屛(4)

 

 

 金玉均

 行書

 

 

 閔泳翊

 芸楣蘭

 

 

 

 60

 13(병풍 3좌 포함)

 6

 6(사민도 4폭 포함)

1930년, 1932년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 출품 박영철 수장품 분류표


1932년 10월에 개최된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 기사, 「진장비보(珍藏秘寶)의 고서화(古書畵)」, 『동아일보』, 1932.10.18

                   
이들 작품은 사진 등 구체적 정보가 없어 어떤 작품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32년의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에 출품된 김홍도의 <사민도(四民圖)>에 대하여 일제시기의 대표적 화랑인 조선미술관 주인인 오봉빈이 『동아일보』, 1932년 10월 3일 4면에 쓴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를 열면서」에서  “朴榮喆氏 出品의 士, 農, 工, 商의 古風을 各各 寫生한 檀園 四民圖는 名作으로 風俗畵 參考로 愛重할 逸品”이라고 특별히 평한 것으로 미루어 높은 수준의 작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수장가가 출품했지만 “特히 古經堂 金大鉉氏, 多山 朴榮喆氏, 素荃 孫在馨氏, 朴昌薰博士 其他 諸氏의 直接間接으로 指導하시고 애써주신 結果로 생각하며 깊이 敬意를 드리는 바”라고 한 것으로 보면 이 시기에 이미 박영철은 주요 수장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글: 김상엽 관리자
업데이트 2017.05.27 12:05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