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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방과 카페 4: 끽다점 연애풍경 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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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대표적인 대중지인 『삼천리』제8권 제12호(1936. 12. 1)에 게재된 좌담 「끽다점 연애풍경(喫茶店 戀愛風景)」을 통해 당시 다방의 풍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좌담에는 인사정(仁寺町: 현 인사동) ‘비너스’의 복혜숙(卜惠淑), 장곡천정(長谷川町: 현 소공동) ‘낙랑 파라’의 김연실(金蓮實), 본정 2가(本町: 현 충무로 2가) ‘모나리자’의 강석연(姜石燕)이 참가했다.

차 마시려 오는 손님종류
기자: 서울시민 60만 명의 ‘거리의 공원’이요 또 인텔리와 모던남녀의 휴게실인 끽다점에 모이는 손님들은 대개 어떤 분들이 많습니까? “배우가 많을 걸요 ‘비너스’의 복혜숙씨 대답 좀 해주세요. 빙그레 웃고만 있지 말고. 

복혜숙: 우리 집에서는 영화도 찍었는데 배우가 안 오려구요. 많이들 오셔요.

기자: 이름을 좀 대보아요.


복혜숙(1904-1982): 배우, 성우, 성악가(유행가), 본명은 마리. 1926년 영화 <농중조(籠中鳥)> 출연으로 인기스타가 되었다.



김연실(1911-1997): 배우, 가수. 해방 후 월북하였고 1977년 인민배우 칭호를 얻었다.  



강석연(1924-2001): 배우, 가수. 1930년대 초반에 막간 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복혜숙: 그 많은 이들 다 어떻게? 동양극장(東洋劇場)의 동극좌(東劇座), 청춘좌(靑春座)에 다니는 여러분들 모두 오지요. 심영(沈影), 서월영(徐月影), 황철(黃澈), 차홍녀(車紅女), 지경순(池京順) 등.

기자: 와서는 차 마실 때 그 ‘포-즈’가 어때요.

복혜숙: 피곤한 머리를 쉬이려 오시는 이만치 고요히 커피를 마시며 담배연기 뿜으며 생각들 하는 듯해요. 그 중에는 ‘킹오브킹’이나 ‘화잇 호스’ 몇 잔을 마시고 취흥이 도도하여 도원경(桃源境)에 배회하는 이도 있고요.



<대경성부대관>(1936)의 서대문[죽첨정(竹添町)] 부분


기자: 문사(文士)나 화가 손님으로는? 

복혜숙: 예전에는 빙허(憑虛: 현진건),독견(獨鵑: 최상덕) 노심산(盧心汕: 노수현), 구본웅(具本雄), 이청전(李靑田: 이상범) 같은 분들이 가끔 오셨지요. 언젠가 동아일보의 김준연(金俊淵) 씨가 김말봉(金末峯) 여사와 함께 와서 커피 잡숫고 가더구만. 문사는 아니지만 여운형(呂運亨) 씨 오셔서 초콜렛과 차 마시고 가기도 하고.

김연실: 우리 집에 오는 문사로는 안석영(安夕影: 안석주), 최정희(崔貞熙), 정지용(鄭芝鎔), 김상용(金尙鎔) 씨들과 또 저 함대훈(咸大勳), 이헌구(李軒求), 김광섭(金珖燮) 씨 등 해외 문예파 손님들도 가끔 와요, 춘원(春園: 이광수) 씨도 간혹 오시고 팔봉(八峯: 김기진)도 이하윤(異河潤) 씨도 김기림(金起林) 씨도 그리고 언젠가 여류 문사일파가 오셨더구만. 모윤숙(毛允淑), 장덕조(張德祚), 최정희, 노천명 씨 등 아마 무슨 집회를 끝마치고 그 길로 오신 듯. 문사양반들이 차 마시는 풍경은 퍽 고요해요. 곁에서 누가 신문장 뒤지는 소리 나는 것조차 귀찮은 듯 ‘침묵(沈黙)의 실(室)’에 감겨 시상(詩想)을 닦거나 소설 스토리를 생각하는 듯해요. 간혹 이야기한데야 예술과 영화에 대한 화제가 많더군요. 그분들은 ‘세레나데’ 같은 고요하고 낮은 음악을 좋아하더군요.

기자: ‘낙랑’은 이름이 조선의 고전맛(古典味)이 나고 또 위치가 덕수궁 옆 조선호텔 부근 여러 신문사지대(新聞社地帶)에 있기 까닭에 일하다가도 산보하다가도 여러분들이 찾아오기 쉬워요. 영화인들은요? 


김유영(1901-1940): 영화감독. 무성영화시대에 무기로서의 영화운동을 펼쳤던 카프(KAPF)계열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임자없는 나룻배>(1932)에서의 나운규(1902-1937)와 문예봉(1917-1999). 나운규는 민족영화의 선각자로서 <아리랑>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영화의 정신과 수준을 크게 끌어올린 불세출의 영화작가로 평가된다. 문예봉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로서 195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김연실: 김유영(金幽影), 박기채(朴基采) 씨 같은 감독들이며 문예봉(文藝峰) 같은 여우(女優)며 이명우(李明雨), 나운규(羅雲奎) 씨들이 많이 와요. 와서는 <파리제(巴里祭)>, <서반아광상곡(西班牙狂想曲)>, <모로코> 같은 외국영화 비평을 하고 있지요. 데-도 릿지[독일출신 미국의 영화배우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추정]나 갈보[스웨덴 출신 미국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롬바드[미국의 영화배우 캐롤 롬바드Carole Lombard] 같은 여우들 비평도 하고요.

기자: 강석연 씨는 어때요.

강석연: 나는 ‘부라한[‘플라타느’로 추정되나 강석연은 ‘모나리자’를 경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을 개점한지 며칠 아니되고 또 퍽들 문사양반이나 음악과 영화계인사가, 많이 찾아오시는 모양이나 얼굴을 잘 모르겠어요. 


<경성정밀지도>(1933)의 명동성당, 본정 2정목 부분



끽다점 ‘금강산’의 상품권. 본정 2정목 명치제과 맞은편에 있었다.



 ‘플라타느’ 다방 성냥갑


기자: 레-코드 방면에 가수(歌手)로 계시니만치 그 방면 손님이 많을 걸요.

강석연: 네, 여러 분이 와요.

기자: 왕수복(王壽福), 선우일선(善于一扇), 강홍식(姜弘植), 김복희(金福姬) 같은 분들도 오는가요.

강석연: 여류가수 들은 잘 오지 않어요. 다점(茶店)에는-그리고 명치정(明治町: 명동)의 ‘금융가’가 가까우니만치 주식에 관계하는 이들이 많아요.

김연실: 우리 홀에는 빅타-컬롬비아가 가까운 탓인지 가수도 여러분 오셔요.

복혜숙: 가수는 아니지만 태평문예부장(太平文藝部長)으로 있는 이서구(李瑞求) 씨 같은 분이 원고지를 옆에 끼고 가끔 와서 레코드 선전 겸 한참 말씀하다 돌아가지요. 그리고 우리 홀에는 기미(期米: 미두(米豆). 현물 없이 쌀을 팔고 사는 일), 광산(鑛山)하는 분들도 와요. 기미하는 분들은 내가 인천에 삼년 동안 있었기에 그 방면 손님이 많아요. 그리고 문사 손님 중 해외 문학파 여러분은 한 번도 않와요.



<경성정밀지도>(1933)의 인사동 부분



“인사동 152번지 계명구락부 아래층 전원 카페 자리에 ‘빠-비너스’ 끽다점을 정영옥씨가 9월 1일부터 개업한다”는 『매일신보』 1932년 8월 30일 기사.


기자: 파리 갔다 온 사람이야기 들으면 거기서는 십전짜리 커피 한잔 청해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기서 천천히 놀다간대요. 여기서 그렇게 30분, 한 시간 늑장피우면 빗자루로 쓸어낼 걸. 삼씨(三氏) -모두 미소(徵笑) -묵묵부답.

기자: 대개 모여드는 시간은!

복혜숙: 극장이나 영화관이 파하는 때. 대개 열한 점, 열두 점(11시, 12시)이지요.

김연실: 극장 파하는 때도 만치만, 오후 네 시 각 관청과 학교가 파하는 때에 많이들 오지요. 그리고 일요일과 제일(祭日)에도 많구요.

강석연: 우리 홀은 워낙 본정통(本町通), 사람 많이 다니는 곳인지라 점심 때 문 열면 열두 시경까지 늘 비지 않아요.

기자: 청년들이 많은가요.

삼씨(三氏): 스물 한둘부터 삼십 칠팔까지가 가장 많지요. 직업으론 신문기자, 배우, 문사, 화가, 음악가 같은 인테리층. 거기다가 은행회사원과 교사들도 끼지. 













김상엽 관리자
업데이트 2017.06.2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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