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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방과 카페 2: 종로의 다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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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흥공간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한 다방과 카페는 오늘날 우리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다방과 카페와는 달랐다. 다방이 커피를 비롯한 차를 파는 장소였다면, 카페는 여급의 시중을 받으면서 술을 파는 술집이었다. 오늘날의 다방이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이 여급과 더불어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인식된다면, 카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청춘남녀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로 생각되는 것과는 반대이다.


1930년대의 종로. 아래쪽 3층 건물이 동아일보사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창업한 다방은 1927년 봄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하와이에서 데려 온 묘령의 여인과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였다. ‘명동백작’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소설가 이봉구는 ‘카카듀’는 프랑스 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 아지트인 술집 이름의 하나라고 증언한 바 있다. 이경손은 경영도 미숙하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수개월 만에 ‘카카듀’의 문을 닫고 상해로 갔다고 한다. 다방이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이 일반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성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문물을 먼저 경험하고 돌아온 해외유학파 출신과 이른바 문화인을 자처한 일부 사람들은 서로의 지식을 나누고 자연스러운 토론도 하는 유럽식의 살롱 문화를 다방을 통해 실현해 보고 싶었다. 카페와 달리 문화․예술인들이 다방의 경영에 손을 대었던 데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종로의 다방들(1930-60년대)


‘카카듀’에 이어 1929년경에 심영과 일본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하고 영화배우를 하던 김인규가 종로 2가 YMCA 근처에 ‘멕시코’를 열었다. 그러나 ’멕시코‘는 몇 년 후에 술집으로 변했다. 결국, 1920년대 말까지는 다방이라는 새로운 근대 공간이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아 가기 위한 과도기적 시대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소공동에 이순석이 문을 연 ‘낙랑파라’는 거의 처음으로 수지맞는 경영을 한 곳이다.


<경성정밀지도>(1933)의 종로 1-2가 부분



<대경성부대관>(1936)의 종로 1-2가 부분


일제강점기 당시 가장 성공한 대중지로 평가되는 『삼천리』는 제6권 제5호(1935년 5월호)에서 ‘끽다점평판기(喫茶店評判記)’를 게재하여 당시 경성시내 다방에 대한 평을 하였다.(가급적 원문을 살렸으나 일부 현대문법에 맞게 바꾼 부분이 있다.)


1930년대의 사진엽서. 오른쪽의 기와집이 종로 2가 네거리 보신각이다.
그 왼쪽으로 한 집 건너에 ‘유창상회(裕昌商會)’간판이 보인다. 그 두어집 뒤에 '뽄아미'가 있었다.
 



「구본웅 개인전 기사」, 『동아일보』, 1933년 11월 19일


뽄아미
신문기자와 은행회사원들이 가장 많이 출입하는 뽄아미는 종로 네거리 보신각에서 유창상회(裕昌商會)를 끼고 두어집 가면 외형은 빈약하게 금자(金字)박이 창을 한 집이다. 그러나 내부는 달라서 가장 값비싼 의자 탁자를 하여 놓은 곳이다. 일광을 잘 받아들이게 못되어 백주에도 전등을 켜야 함이 오히려 그윽한 맛을 준다고나 할까. 시내 끽다점으로서 카운타-에 미모의 여인이 앉은 곳이 여기와 ‘제비’ 뿐이다. 화가도 많이 모인다. 그래서 조그마한 개인전이 가끔 열린다. 최근 두어 달 사이에도 구본웅(具本雄)씨 개인전 도상봉(都相鳳)씨 개인전 등. 다른데 보담 조금 비싸서 그렇지 홍차는 마실 만 하였다. 원래 이 집은 대구의 청년 부호가 독일가서 대학 마치고 나오니 할 일이 업서 이 일을 시작하였다 하느니 만치 퍽이나 값나가게 장식하였다. 주인은 그 뒤 세 번이나 바뀌었으나.
(*본아미(bon ami)는 친구, 연인, 애인의 의미이다. 편집자)


다방 멕시코 전경(간판 위에 큼지막한 물주전자를 매달아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멕시코
배우, 여급, 기생이 가장 많이 출입하기로 유명한 멕시코! 이 집은 덕흥서림(德興書林) 곁이요, 낙원회관(樂園會舘) 건너편에 있다. 벽의 장식에도 요전에는 최승희(崔承喜)씨의 나체 무용모양을 사진박아 걸었고 「모나리자의 실종」, 「서반아의 광상곡(狂想曲)」 등 몹시 선정적인 극장 포스타 등을 걸었다. 음악도 다른 데는 양곡(洋曲) 전문이나 여기는 일본소리도 조선속요(朝鮮俗謠)도 새로 나오는 것이면 대개 무엇이든지 다 있다. 밤늦게 요리점에서 돌아오는 「어여쁜 거리의 천사인 기생 아씨들이 흔히 몰래 만나는 로맨스 많은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감미(甘美)한 지분(脂粉)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극성이 많은 화려한 곳이라 할까. 이곳의 소-다수는 5, 6월 삼복(三伏)에 단연 마실 만하다.




1939년 2월 『조선일보』에 실린 박태원의 「제비」 상, 하


제비
총독부에 건축기사로도 오래 다닌 고등공업(高等工業)출신의 김해경(金海卿)씨가 경영하는 것으로 종로서 서대문 가노라면 10여 집 가서 우편(右便) 페이브먼트(포장도로: 편집자) 옆에 나일강반(江畔)의 유객선(遊客船) 같이 운치 있게 비껴선 집이다. 더구나 전면 벽은 전부 유리로 깔았는 것이 이색이다. 이렇게 종로대가(鍾路大家)를 옆에 끼고 앉았느니 만치 이 집 독특히 인삼차나 마시면서 바깥을 내다 보노라면 유리창 너머 페이브먼트 위로 여성들의 구둣발이 지나가는 것이 아름다운 그림을 바라보듯 사람을 황홀케 한다. 육색(肉色) 스타킹으로 싼 가늘고 긴- 각선미의 신여성의 다리 다리 다리- 이 집에는 화가, 신문기자 그리고 도쿄(東京) 오사카(大阪)로 유학하고 돌아와서 할 일 없어 양차(洋茶)나 마시며 소일하는 유한청년들이 많이 다닌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 기분 있어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 중에 가장 이 땅 정조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이름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끈다.


1932년경의 사진엽서. 화신백화점 동관 전경. 
그 왼쪽은 ‘화신백화점 서관’ 신축 현장 


김상엽 관리자
업데이트 2017.08.1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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