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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수산장과 송석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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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엽(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북악을 배경으로 한 벽수산장. 주변 한옥과의 대조가 이채롭다.

돌문안과 빼죽당

윤덕영이 온갖 비난을 들어가면서 지은 벽수산장은 윤덕영이 죽은 후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1년 군부와 결탁한 일본의 재벌 미쓰이(三井)의 소유로 바뀌었다. 광복 이후에는 덕수병원, 한국전쟁 때에는 유엔군 장교숙소, 1954년부터는  ‘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國際聯合韓國統一復興委員會, 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약칭 ‘언커크’에서 이 건물을 사용하였다. 1966년 4월 5일 지붕 수리 중 2,3층이 소실되었고, 1973년 도로 정비 사업을 하며 완전히 철거되었고 현재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벽수산장 앞에 십자가 표지를 한 차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언커크에서 사용할 때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된다.


 “언커크 본부에 큰 불” 『동아일보』 1966.04.05일자.


언커크가 있을 당시 옥인동 주민들은 벽수산장이 자리한 옥인동 47번지 일대를 ‘돌문안’이라고 했으며, 벽수산장 건물을 ‘빼죽당’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돌문안’이라는 것은 벽수산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돌기둥과 커다란 철문이 있었기 때문이며, ‘빼죽당’은 건물의 지붕이 삐죽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벽수산장 주변으로 한옥들이 들어섰고 고딕양식의 웅장한 건물은 주변 경관과는 매우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


송석원을 보도한 『동아일보』 1924.07.21일자 기사. 사진 뒤 쪽으로 웅장한 벽수산장이 보인다.



벽수산장 입구 돌문의 흔적. 현재 옥인동 47-22, 33.

윤덕영 소실의 집

윤덕영이 새로 얻은 옥인동 47번지 안에는 모두 19채의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 전하는 건물은 옥인동 47-133번지 한옥뿐이다. 옥인동 47-133번지 한옥은 1977년 이후 옥인동 서용택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남산한옥마을에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후인 순종의 비로 윤덕영의 동생 윤택영의 딸인 순정효황후(윤비) 친가가 아니고 윤덕영 소실의 집이다. 아마도 윤덕영이 당시 왕비의 백부였고 이곳을 황후와 연결하여 과장되게 설명하려는 경향에 따라 황후의 친가인 듯이 설명되었던 듯하다. 퇴락했지만 당시의 품격과 운치가 남아 있다.


윤덕영 소실의 집이었던 옥인동 47-133 서용택 가옥 입구




서용택 가옥 입구의 석축과 돌계단


서용택 가옥 입구에서 내려다 본 정경



벽수산장 방향에서 바라 본 서울 중심부. 화면 왼쪽의 기와지붕과 나무가 있는 곳이 경복궁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7.05.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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