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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와 반환-그 지난한 여정
 전쟁이 끝나고 70여년이 지난 2013년 뮌헨에 있는 구를리트의 아들 집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미술품 1280점이 발견되었다. 이 작품들은 드레스덴에 살던 힐데브란트 구를리트가 전쟁이 끝나자 자신이 소장했던 소위 퇴폐적인 미술품들이 드레스덴 폭격으로 모조리 불탔다고 보고하고 숨겨놓아 전후 연합군들로부터 지킬 수 있었던 그림들이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이후 아들이 관리를 하면서 야금야금 팔아 생활비로 사용하다 그 전모가 드러난 것. 이 중에서 미술관에서 몰수된 작품이 384점, 유대인 개인 소유였던 ‘약탈미술품’이 593점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300점은 구를리트 개인 소유로 밝혀졌지만 ‘약탈미술품’의 경우 이를 원래 소장했던 유대인 생존자가 거의 없는 데다 소유권을 증명할 서류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또 공소시효가 지난 관계로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일이 매우 어려운 형편으로 설혹 약탈미술품이 발견된다 해도 원상회복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실 문화재 예술품의 약탈은 전쟁에서 이긴 자들이나 승리한 국가의 특권이었다. 이런 약탈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문화재는 빼앗긴 자들은 ‘문화 국가주의’(cultural nationalism)를, 빼앗아 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은 ‘문화 국제주의’(cultural internationalism)를 근간으로 대립하고 있다. 사실 모든 문화재, 예술품은 원래 그것을 만든 나라와 국민의 소유지만 그것이 누구의 것이고 어디에 있든 문화재는 인류공동의 자산이란 점에서 세계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불법적 약탈이나 기타 방식으로 다른 나라로 반출된 예술품에 대한 원상회복 문제가 1960년대 유엔 총회에서 제기되었고, 문화 분야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로 넘겨져서 1954년 ‘전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Cultural Property in the Event of Armed Conflict with Regulations for the Execution of the Convention)을 시작으로 1964년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권고’(Recommendation on the Means of Prohibiting and Preventing the Illicit Export, Import and Transfer of Ownership of Cultural Property), 1970년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 1979년 ‘전쟁이나 식민지로 인하여 빼앗긴 문화재의 원산지 반환 운동’, 1995년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 반환에 관한 유니드로 협약’(UNIDROIT Convention on Stolen or Illegally Exported Cultural Objects) 등 불법 반출된 예술품 반환의 기본 틀을 마련해 놓고 있다. 

 또한 유네스코는 1970년 이전에 반출된 사례를 다루기 위해 1978년에 ‘유네스코 불법 문화재 반환 촉진 정부간 위원회’(UNESCO Intergovernmental Committee for Promoting the Return of Cultural Property to Its Countries of Origin or Its Restitution in Case of Illicit Appropriation, ICPRCP)를 설립, 산하에 두고 있다. 하지만 유네스코 협약은 구속력이 없는 국제법이며, 문화재 반환 분쟁에서 가장 많이 원용되는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은 1970년 이후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반출된 문화재 반환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미술품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이런 작품들이 전쟁 중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골이 송연해 질 지경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작품으로 북유럽르네상스 즉 플랑드르 화파를 대표하는 반 에이크 형제의 ‘겐트 제단화’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1632~1675)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 1668, 캔버스에 유화, 51×45㎝)가 그 예이다. 또 그의 대작으로 비엔나미술사미술관에 찾아 돌려준 ‘회화의 기술’(De Schilderkunst, 1666경, 캔버스에 유화, 130×110cm)등이 등장한다. 여기에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등장한다.
 


반 아이크 <신비한 어린 양의 제단화> 1426-32년경, 목판에 유화, 461X350cm, 성 바보성당 겐트 벨기에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그림은 물감에 최초로 기름을 타 사용한 플랑드르의 화가 반 에이크 형제의 대표작인 ‘겐트 제단화’이다. 현재 겐트(Ghent)의 성 바보(St. Bavo) 성당에 걸려 있는 작품으로 구원의 신비라는 주제를 다룬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대표작이다. 사실 제단화는 예배 때는 열어놓고 평소에는 닫아두는 접이식 그림으로 2단으로 구성되어있다. 특히 그림의 일부인 ‘어린 양에 대한 경배’ 속 인물 하나하나가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화면의 중심에 양이 배치되어 글을 모르는 당시 사람들에게 성경의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이 당시는 성경을 읽을 수 없는 문맹자들에게 교리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려진 성화가 많았다. 기록에 의하면 형인 후베르트 반 아이크(Hubert van Eyck, 1385경~1426)가 1426년에 시작해서 동생인 얀(Jan van Eyck, 1395경~1441)이 1432년에 완성한 것으로 나온다. 그림은 20편의 부분으로 된 전개식 제단 즉 폴리프티카(polyptych)가 있고, 중앙도 내측 하단 중앙에 중심주제로 요한 묵시록에 의한 어린 양이 자리 잡고, 상단에는 여호와와, 성모, 세례자 요한이 나오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베르메르 <천문학자> 1668, 유화, 50x45cm, 루브르박물관


 베르메르의 천문학자는 그의 ‘지리학자’(The Geographer, 1668~1669, 캔버스에 유화, 53x 46cm, 슈데텔미술관 소장)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천문학자’는 우주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를 그린 것으로 두 작품 모두 일반적인 베르메르의 작품과 달리 남성이 주인공이다. 방안에는 머리를 길게 기른 천문학자가 책상에 기대어 1618년 요도쿠스 혼다우스(Jodocus Hondius, 가 제작한 천체의를 돌려보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의복은 매우 두툼한데 네덜란드의 추운 날씨 때문에 일상복이 아닌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실재 인물을 그리기보다는 천문학에 더 중점을 두고 그린 것으로 보인다. 책상에는 아드리안 메티우스(Adriaan Metius, 1571~1635)가 쓴 ‘별들의 탐구와 관찰’이라는 책이 있고 책상덮개 옆에는 천문관측의가 놓여있다. 천문관측의는 선원들이 항해를 할 때 별을 보면서 항로를 잡아나가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천체의 왼쪽에는 큰곰자리가, 중앙에는 용자리와 헤라클레스 자리, 오른쪽에는 거문고자리가 보인다. 벽에 서있는 옷장 문에는 로마숫자가 적혀있는데 이는 작품이 완성된 날이다. 벽에는 아기 모세가 담긴 왕골상자를 발견하는 그림이 걸려 있다. 성경에서 모세의 탄생은 예수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으로 새로운 과학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34~37점의 작품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베르베르의 작품 중 제작연도가 명확하게 적혀 있는 3점 가운데 하나로 과학사가 급속도로 변화하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베르메르 <지리학자> 1669, 캔버스에 유화, 46.5x53cm, 슈타델미술관


  ‘지리학자’는 미생물학자이자 현미경을 발전시켜 미생물과 원형동물을 처음으로 관찰했던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y van Leeuwenhoek,1632~1723)이다. 그는 베르메르와 같이 델프트에서 태어난 과학자이자 무역업자로 미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과학자가 무역업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당시에 과학은 실용적인 것으로 레벤후크의 과학적 지식은 해상무역에 도움이 되는 광학이론과 기술로 구성된 것이었다. 지리학자의 머리 위에는 헨드리크 혼디우스(Hendrik Hondius the Elder, 1573~1650)가 제작한 지구의가 놓여있다. 이 지구의는 1600년 처음 만들어졌고 18년 뒤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때 1610년경 발견된 인도양의 새 항로가 표시되어있다. 새 항로의 개척은 무역대상국인 동남아시아까지 가는 길을 적어도 몇 달을 단축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며 과학의 발전은 부의 증대와 비례했다. 과학은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었으며 좁은 플랑드르지방, 네덜란드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베르메르의 시대야 말로 과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역사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단순한 형태와 비례를 통해 표현하면서 주로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주제를 다루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공식적, 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재료도 프레스코나 템페라 그리고 유화를 사용하면서 해부학적인 구조를 중시하는 한편 이론적이며 정적이고 균형적인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반면 북유럽르네상스는 정교한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실용적이며 가급적 실제와 똑같이 정직하게 그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 종교적인 반면 가정적이기도 했으며 대개 부유한 상인이나 무역업자 농부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북유럽 르네상스는 개개인의 성격과 개성을 중시했으며 나무판 위에 유화를 재료로 주로 사용하면서 구조보다는 외향을 중시했다. 대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을 통해 복잡하고 불규칙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이 북유럽르네상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차이이다.  


미켈란젤로 <성모자상> 1501-1504, 대리석, 높이 200cm, 성모성당 브뤼헤


‘성 모자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그의 생전에 유일하게 이탈리아 밖으로 나온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브뤼헤의 부유한 옷감상인이 약 4000 플로핀에 구입해서 1506년 교회에 기증한 작품으로 마리아는 예수를 붙잡거나 그를 보지 않고 아래를 응시하는 도상이다. 이는 제단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암시한다. 또 마돈나와 예수는 그의 피에타상과 매우 유사하다. 옷 주름은 매우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어 성모의 인자함과 그윽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성모자상은 나폴레옹에 의해 1794년 프랑스로 옮겨졌다가 돌아왔고 다시 나치에 약탈당했으나 모뉴먼츠 맨들의 활약으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1972년 작품을 해치려는 사건이 있은 후 방탄유리에 쌓여 약 4.5미터 밖에서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이 구해낸 예술품 중에는 다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렘브란트의 <자화상>등 수없이 많다. 현재 폴란드의 차르토리스키 미술관(Czartoryski Museum)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The Lady with the Ermine 1452 목판에 유채, 53.4x39.3cm)도 이들이 구출해낸 작품 중 하나이다. 당시 스포르자 군주의 애첩이며 시인이자 당시 절세의 미인으로 유명했던 체칠리아 갈레라니(Cecillia Gallerani)를 그린 초상화로 얼굴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게 배경과 분리되어 분명하게 드러난다. 순결의 상징인 담비를 안은 약간 붉은빛의 머리카락이 턱에 이르러 얼굴의 윤곽선을 이룬다. 이마에는 검은색 장식 끈이 그리고 눈썹근처에는 또 다른 장식용 금줄이 자리해 간결한 중에 우아함을 더한다. 여인의 우아하고 세련된 얼굴과는 달리 담비는 매우 거친 야성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마치 가시가 있는 아름다운 장미를 연상시킨다. 


다 빈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The Lady with the Ermine> 1489~90, 목판에 유화, 54×39cm, 차르토리스키박물관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은 1946년 폴란드에 반환되었다.

 이렇게 전쟁 중에 문화유산, 예술품을 보존한 모뉴먼츠 맨들은 한국에도 있었다. 6.25전쟁 당시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있던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김영환(金英煥, 1921~ 1954)이나 덕수궁에서 인민군들이 빠져나오길 기다렸다가 공격을 해서 제임스 헤밀턴 딜(James Hamilton Dill) 등이 그들이다. 

 전쟁을 빌미로 문화유산이나 예술품을 파괴하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장기간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서는 극단 이슬람 반군세력이 종교를 이유로 고대 로마 및 비잔티움시대의 유적을 파괴했다. 또 내전을 빌미로 혼란을 틈타 많은 유적들이 약탈당하고 반출되고 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의한 바미안 석불 파괴, 특히 2011년 시리아의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정부군과 반군에 의한 시리아의 유물 훼손과 약탈도 여전하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십자군 전쟁당시 레반트(Levant)에 건설된 십자군의 요새로 ‘기사들의 성채’라 불리는 크락 데 슈발리에(Crac des Chevaliers)의 문화재가 약탈되었고, 1~7세기 로마 유적이 산재한 서부 아파메아(Apamea)에서는 불도저를 동원해 신전 바닥의 로마시대 모자이크화를 떼어갔다. 이렇게 약탈된 시리아 문화재는 터키와 요르단의 장물 시장에서 거래가 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프리카 말리의 극단 이슬람 무장조직에 의한 팀북투(Timbuktu) 문화재 파괴에 이어 여전히 계속되는 문화유산의 파괴와 약탈을 막기 위해 영국에서는 최근 다시 모뉴먼츠 맨 부대가 창설되었다고 전한다. 전쟁도 인간이 벌이지만 그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이란 동물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이다. (끝)

글/ 정준모 관리자
업데이트 2017.04.2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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